한국일보

변호인의 딜레마

2019-10-12 (토) 12:00:00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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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그를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둘은 백년을 가약하며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함께 자녀를 양육하며 천일이 훨씬 넘는 날들을 보냈다. 여느 부부처럼 그들만의 한이 맺힌 속사정이 있었겠지만, 이혼이라는 법적 소멸 절차로도 완전히 끊어내지 못했던 그 둘의 인연은 어느 날 그녀가 그를 충격적인 방법으로 살해하며 파멸되었다.

그녀의 범행이 오해, 증오, 아니면 망상의 결과물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주도면밀하게 시신을 유기하며 범행의 증거를 소멸하려 한 정황이 전파를 탄 후, 단순히 “우발적인 실수”였다는 그녀의 진술은 믿기 힘들어졌다. 혐의자가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고의적 살인이 기정사실화 되어버렸고,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한 담당 변호사가 변론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을 맡았다가 사임하게 된 그 지인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 석 자 끝에 변호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위하여 어쩌면 나 이상으로 고군분투하던 내 가족들 역시, 아마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유죄 낙인이 찍혀버린 누군가의 변호인으로 나선다면 나의 선택을 극구 만류하며 사회적 질타를 피해가기를 강권하리라. 윤리와 직업의식이라는 기로에서 변호사가 한번 이상씩 경험할 수 있는 딜레마다.


알고 보면 전문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시험과 교육을 통한 장황하고 고된 윤리라는 필수 과정이 요구되는데, 변호사로서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전문성의 반 이상은 공공성과 윤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성실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의뢰인의 인권을 옹호하다보면 일반 사회가 생각하는 도덕적 윤리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살인자를 변호해야 하는 일처럼 말이다.

최고의 육상선수는 가장 단시간에 완주하고, 최고의 외과의사는 가장 복잡한 과정의 수술을 해내듯이, 대부분의 “장인”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다. 그런데 때때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는 변호사는 대죄를 무죄로 만들거나 잘못된 현상을 무마시키게 된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변호사의 원동력이 사명감인지, 승부욕인지, 고지식함인지, 직업교육과 사회경험을 통해 얻은 논리로 빚어낸 일방적 합리화인지, 돈이 되면 무조건 다 하겠다는 단순한 물욕인지는 사례별로 다르겠지만 변호사는 한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승소나 이익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이면서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여전히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과잉형벌로 피해를 보는 사례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죄명을 이유로 한 피고의 변호사 선임 권리 자체를 박탈할 수는 없다. 현 시점의 재판제도는 분명히 공정한 재판을 위해 구축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정의의 실현과 진실의 은폐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다.

변호도 판결도 진실과 미래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과 판단으로 이루어지기에 오류가 따를 수 있다. 법을 더 알아갈수록 준법과 인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성을 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완벽한 심판은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들은 현존하는 법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이런 자각이 자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이 사회의 법을 진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이지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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