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빙산의 일각

2019-10-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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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직경은 지구의 109배, 무게는 33만 배에 달한다. 태양 같은 별이 은하계에는 1,000억에서 4,000억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에서는 1조까지 잡기도 한다.

이런 은하계가 우주에 1,000억개에서 2,000억개가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숫자다.

그러나 이런 눈에 보이는 우주는 진짜 우주의 극히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정체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어두운 물질(dark matter)’과 ‘어두운 에너지(dark energy)’가 사실은 우주의 전부라는 주장이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게 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를 비롯한 나선형 은하의 회전속도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전부라고 가정했을 때와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케플러의 법칙’에 따르면 중심을 따라 별들이 회전할 때 중심에 가까운 별들은 빨리 돌고 멀리 있는 별들은 천천히 돌게 돼 있다. 태양계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운 수성은 공전 주기가 88일이지만 목성은 12년에 달한다.

그런데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별들은 중심 거리에 관계없이 일정한 속도로 돌고 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훨씬 더 많이 은하계에 퍼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중력의 ‘렌즈 효과’도 ‘어두운 물질’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물질 주변의 공간을 휘게 한다. 따라서 은하 주변을 지나는 빛은 은하의 중력에 따라 곡선을 그리며 흐르게 된다. 그런데 그 휜 정도가 눈에 보이는 물질만으로 계산한 것보다 더 큰 것이 확인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85%가 ‘어두운 물질’이며 우리가 관측 가능한 물질과 에너지는 전체 우주 물질 에너지의 5%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머지 가운데 27%는 ‘어두운 물질’, 68%는 ‘어두운 에너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 존재는 방대한 규모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관찰된 적은 없다. 이들이 인간의 주 관측 수단인 빛과 라디오 등 전자파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소립자로 구성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0년간 이 ‘어두운 물질’에 관해 연구해 온 프린스턴 대 알버트 아인슈타인 석좌교수 제임스 피블스가 올 노벨물리학 수상자로 선정됐다. 피블스는 수상 소식을 듣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한다. 그는 “나는 55년간 우주학을 연구해 왔으며 초창기 연구자 중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며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60년대부터 빅뱅 이후 우주의 진화에 대해 연구해온 그는 80년대 ‘어두운 물질의 존재’에 대한 가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의 주장은 그 후 30년 동안 관측결과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수상 소식을 발표하면서 “피블스의 이론적 발견은 빅뱅 이후 우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데 기여했다”고 밝혔고 케임브리지대 교수이자 영국 왕실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는 그를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실증 우주학의 선구자이며 50년에 걸친 긴 업적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눈에 보이는 우주가 진짜 우주의 5%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광대무변하고 어두운 우주가 오만한 인간들에게 겸손을 가르치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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