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가이드 다시 찾은 지리산 -화대종주길
찰나를 마주치는 인연들이 같은 길을 걷게된 우연으로 음식과 웃음들을 나누고…
▶ 천왕봉에서의 장쾌한 감격은 아~ 이래서 이곳에 다시 서길 그렇게 간절히 원했나보다…
천왕봉에서의 전망.
연화봉에서 줌렌즈로 본 제석봉과 천왕봉.
천왕봉 정상비.
생애 3번째의 지리산행에 나선다. 공군에서 막 제대한 1975년 8월에 죽마고우들과 함께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걸었던 일이 그 첫번째이고, 그 후 무려 40년이 지난 2015년 10월에 딸아이의 결혼식에 참가키 위해 고국을 찾은 계제에 홀로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한 일이 두번째였는데, 이제 다시 4년이 지난 2019년 9월17일에 이 산을 찾는 것이다.
화엄사의 아랫마을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화대종주의 기점인 화엄사의 지리산 탐방로 입구에 들어선다( 09:22). 꾸준히 걸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12:09)하고 보니, 화엄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만을 감안하면, 5마일쯤에 순등반고도는 약 4000’로 2시간 47분이 소요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물론 고도의 차이는 아주 크지만, LA지역의 Mt. Baldy(10064’)를 Baldy Bowl Trail로 오르는 것에 견주어 볼 만한 산행이다. 노고단대피소에는 10여명의 등산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로 가서 중간의 대피소에 예약을 못했는데 어찌해야 되는 지를 묻는다. 그들이 알려주는 바에 따라, 서울의 사위에게 현장에서 전화를 걸고, 사위가 연하천대피소에 전화로 즉시 예약을 마친 다음, 사위가 자기 주민등록증을 사진찍어 내가 소지한 전화로 전송해 준다. 이런 절차를 거쳐 이윽고 노고단 고개를 통과(12:32; 6.2마일)한다. 중간의 어느 대피소에 예약이 없는 사람은 낮 12시, 예약을 한 사람은 낮 1시가 통과제한시각이라 하니, 나는 다행히 제한시각 28분을 남기고 이를 통과한 것이다.
이 고개에 설치된 안내판의 도움으로 저 멀리 아주 작게 보이는 천왕봉(1915m)을 가늠할 수 있다. 지리산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점에서 우선 안심이 되고 행복한 마음이다. 한 참을 걷다가 ‘한재희’라는 젊은이를 만나 반야봉과 3도봉을 거쳐 연하천대피소까지를 동행한다. 3도봉 정상의 금속제 기념물에 “三道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경남-전남의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天-地-人 하나됨을 기리다 1998년 10월”이라 새긴 글이 훈훈하고도 미덥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17:41; 14.36마일)하여 숙소를 배정 받는다. 침구용 깔판과 모포의 임대료가 각각 2000원이다. 해가 지니 기온이 급냉, 몸이 떨려온다. 방한복을 꺼내 입고, 피크닉테이블에 마주 앉아 그가 끓여주는 라면과 내 주먹밥으로 저녁을 먹는다. 재희씨는 중간에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으며, 천왕봉까지는 가지 않는단다. 침상 건너의 산객이 나의 행선을 물어온다. 날이 밝는대로 부지런히 걸어 천왕봉을 오르고 대원사까지 내려갈 예정이라고 대답하니, 너무 무리한 계획이 아니냐며 걱정을 한다. 이 분의 걱정이 각성제가 되어 새벽 4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역시 일찍 일어난 분이 있다. 택시운전을 하며, 20년을 벼르다 지리산에 왔다는 김화경이란 경상도 사나이로, 먼 길을 가려면 필요할 거라며 막무가내로 김치를 듬뿍 싸준다. 어제는 반야봉 3거리에서 삶은 계란 1개를 불쑥 건네 주더니, 참으로 정이 많은 분이다. 이 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린다기에, 나홀로 깜깜한 적막속에 산행에 나선다(04:13). 헤드램프 불빛에 트레일은 확실히 드러나지만, 급경사로 오르고 내리는 험악한 구간이 많다.
벽소령대피소가 어둠속에서 차츰 드러난다(05:32). 마침 어느 한 분이 홀로 산행에 나서려는 차림으로 건물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벽소한월’이 아니 ‘벽소일출’을 맞는 하늘의 붉은 구름층을 보며 그와 같이 걷는다. 오늘의 산행목표가 장터목대피소라는 여유만만한 분이어서, 잠시후에는 다시 혼자가 되어 나아간다.
‘선비샘’에서 한 사발 약수를 달게 마신다(06:41). 전망대가 있다. 이른 아침 지리산의 첩첩한 산파(山波)가 푸른 빛을 머금고 드넓게 펼쳐져 있다. ‘남부군’으로 불리우며 쫒기고 쫒기다 사라져간 이 땅의 숱한 젊은이들이 최후의 은신처로 또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을 만큼 넓고 깊은 산세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그 원혼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안쓰런 마음이 우러난다.
칠선봉에 다다른다(07:28). 4년전에는 이 곳에서 한 떼의 산행객을 만나, 마침 비가 그친 찰나를 기하여 내 모습이 담긴 사진 1매를 얻을 수 있었다. 선녀를 연상케 하는 일곱개의 바위가 있다는데, 크고 작은 바위봉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영신봉이라는 팻말을 본다(08:09; 1652m). 세석대피소까지 0.6km가 남았다는 이정이 쓰여있다. 세석대피소에 이른다(08:19; 1545m). 안내사무소 창에 용무가 있으면 벨을 누르라는 메모가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대피소 주변의 등산로에 여러 흥미롭고 유익한 안내판들이 있다.
촛대봉에 오른다(08:51; 1703m).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천왕봉이 그 준수한 자태를 드러낸다. 군계일학이 따로 없다. 신령스러운 느낌이 솟아 난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또 천왕봉을 즐겨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천왕봉을 4.4km를 남겨 놓은 지점으로 지금까지의 노정에서 보는 정상봉의 모습으로는 여기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앞에서 부터 연화봉, 제석봉, 천왕봉, 중봉 들이 거의 일렬종대로 중첩되이 늘어선 모습이다.
연하봉에 올라선다(09:43; 1730m). 전망이 좋다. 장터목대피소까지 0.8km임을 알려준다. 오래지 않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다(10:05). 지난 번에 이곳을 통행제한시각인 오후 3시를 불과 6분 남겨둔 시각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통과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은 그 날 보다 거의 5시간이 더 이른 시각이다.
반갑게도 천왕봉은 이제 1.7km라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마침 앞에 3명의 등산객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동행키 위해 따라 붙는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대원사로 내려갈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는 갈길이 머니 서둘러야 한다며 나를 앞으로 밀어낸다.
제석봉에 이르른다(10:34;1808m). 천왕봉의 바로 아래에 있는 봉우리이므로, 불교 아닌 무속(巫俗)의 제석신(帝釋神)을 염두에 두고 부여된 이름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인 산세가 둥그스럼하고 밋밋하여 편안한 느낌이다. 천왕을 공양키 위해 마련된 널찍한 상석(床石)이 연상된다. 길 오른편에 전망대가 있고, 최치원 김종직 조식 등의 옛 선비들이 이 곳을 찾았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특히 조식선생은 12번이나 지리산을 찾았었다니, 여간 대단한 요산요수 풍류객이 아니다.
하늘세계로 들어가는 통천문을 지난다(11:02). 하늘나라 임금님을 뵙는 길 답게, 가지런한 돌 계단은 물론이고, 철 계단, 철 난간, 목 난간이 거듭된다. 특히 천왕봉 턱밑까지 이어지는 Safety Rope시설은, 안전히 경건히 하늘의 왕을 잘 알현토록 배려한다.
최정상 바로 아래 10m쯤은, 꽤 널찍한 평지이다. 아마도 천왕과 떠오르는 태양을 우러르기 위해 정갈하게 단장한 경배(敬拜)마당인 듯 하다. 지난 번에는 오른쪽으로 올라, 정상비의 뒷면만을 보았었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정상점에 오른다. 정상비의 앞면에 ‘智異山 天王峯 1915m’라는 새김이 선명하다(11:24; 1915m; 24.5마일; 12691’ Gain). 뒷면엔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 새겨져 있다. 숱한 산줄기와 계곡들이 이 천왕봉을 에워싸고 물결처럼 널리 널리 퍼져 나가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 과연 정상비 뒷면의 새김말이 결코 수사적인 말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마침 먼저 올라와 있는 2명의 등산객이 있어 정상비의 앞과 뒤를 배경으로 내 등정기념용 사진을 찍어 달랠 수 있다. 4년전에는 이 곳에 홀로 올랐었고 나의 기념사진을 찍어줄 사람이란 없었다.
수년간 벼르던 정상에 오른 성취감 또 정상에서의 장쾌한 경관을 보는 감격을 뒤로 하고, 이젠 하산에 나선다. 이정판을 보니, 중산리 5.4 km, 대원사 11.7km이다. 난, 물론 화대종주를 하려는 마당이니 당연히 대원사로 가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중봉에 닿는다(11:56; 1874m). 바람은 순하고 햇살은 따뜻하다.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전혀 없다, 대원사로의 하산길엔 도무지 아무런 인적이 없다. 배낭을 내린다. 마지막 남은 주먹밥과 김화경님이 싸준 김치를 펼쳐놓고 지극히 편안한 심정으로 홀로 점심을 먹는다. 숙성한 김치 덕분에 더욱 맛있는 한 끼의 감사와 행복을 누린다.
써리봉을 지나고(12:47; 1602m), 이윽고 치밭목대피소에 들어선다(13:27). 4년전에는 이미 일몰이 지난 시각이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으나 그저 낡고 작은 건물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아주 번듯한 새 건물이 눈앞에 서있다. 안내창구에 직원이 앉아 있다. 국립공원 직영체제로 바뀌었는가 물으니 그렇다 한다.
다시 하산길을 따라 계곡을 내려간다. 무제치기교라 이름한 다리를 건넌다(14:04). 잠시 후 새재로 갈라지는 3거리에 도착한다(14:17). 지난 번에는 새재길을 택했었으나, 오늘은 명실공한 화대종주를 하려는 터라 주저없이 5.9km가 남은 대원사로 이어지는 길을 택한다.
길이 아주 협소하고 위태로운 구간이 더러 나와 진행이 더디다. 철 계단과 철 난간이 되풀이 된다. 오른쪽으로는 제법 큰 소리를 내는 물흐름이 바짝 이어진다.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에 등산로가 끝이 난다. 경남 산청의 유평마을일 인가가 나온다(16:04).
완주자를 위해 카펫을 깔아 놓은 듯, 걷기에 편안하게 느껴지는 포장도로이다. 수량이 많은 대원사계곡의 계류가 길 왼쪽으로 이어진다. 쭉쭉 솟아오른 소나무들이 금강산에서 봤던 미인송에 뒤지지 않을 자태를 보여준다. 마침내 ‘方丈山大源寺’라는 현판이 걸린 사찰 앞에 도달한다(16:30; 31.8마일; 14130’ Gain).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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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