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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언 땅 뚫고 나온 ‘더덕’ 품질이 최고… 어떤 소스와 만나도 ‘찰떡궁합’

2019-10-02 (수) 12:00:00 강레오 ‘식탁이 있는 삶’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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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고지서 자란 더덕 영양 풍부, 3년 이상 땅 속에 있어도 안썩어

▶ 주름 깊고 많아 흙 제거는 어려워, 두드릴때 수분감 있다면 3년 이하

겨우내 언 땅 뚫고 나온 ‘더덕’ 품질이 최고… 어떤 소스와 만나도 ‘찰떡궁합’
중세시대 이전부터 서양에서는 고급 식재료가 땅보다는 하늘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을수록 고급 식재료로 여겼다. 농업을 통한 경작보다는 채집이나 사냥을 통해 얻은 식재료가 더 고급 식재료로 취급 받은 것이다. 심지어 감자는 악마의 식물로 불렸을 만큼 땅에 가까울수록 또는 땅 속에 있는 식재료는 귀한 취급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오랜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뿌리식물인 식재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있더라도 향이 아주 강하지 않은 느낌의 감자와 샐러리악, 당근, 비트 뿌리와 같은 채소들이 거의 전부인 셈이다. 그 중에 유일하게 예외인 것이 트러플 버섯 하나 뿐이다.

한번은 유럽 사람들을 초대한 한국 행사에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자리해 와인을 마시며 인삼과 더덕, 도라지 등이 들어가 있는 메뉴를 소개해 주는 것을 듣고 있었다. 아주 귀한 식재료라고 소개를 하는데 음식에 관한 설명은 주로 몸의 어딘가에 좋다고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특유의 쓴맛을 중화하기 위해 꿀이나 설탕을 넣은 청을 만들어 음식에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음식 고유의 맛이나 물성, 향에 대한 소개는 구체적으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 날 그곳에 나와 있던 많은 한국 식재료 중에 도라지, 인삼도 좋지만 내게는 유독 더덕이 눈에 밟혔다.


더덕은 향이 강하거나 식감이 너무 단단하지 않아 약재보다는 식재료에 더 어울리는 재료다. 따뜻한 음식이나 차가운 음식으로 활용하거나 여러 소스, 양념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쓰임이 다양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았다는 게 몹시 아쉬웠던것 같다.

더덕은 주로 가을 상품으로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최고로 좋은 더덕은 추운 겨울 내내 얼었던 땅이 녹고 봄에 새싹이 조금씩 올라오기 직전의 더덕이다. 지난 봄에는 이 환상적인 더덕을 만나러 강원도 정선의 해발 800m 고지에 있는 훈향더덕 농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높게는 해발 1,000m까지도 더덕이 서식하며 땅의 영양 상태에 따라 9~10년생 더덕이 채취되고 있었다.

일단 캐기 전부터 산에서 봄 아지랑이처럼 스물 스물 더덕 향이 올라왔다. 땅을 조금씩 파다 보니 더덕 순이 작은 아스파라거스처럼 땅을 뚫고 올라와 있었다. 호기심에 순만 뜯어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묻은 흙만 털어 바로 입으로 넣었다. 동공이 확장되는 맛이었다. 더덕의 향은 있지만 더덕과는 다른 식감으로 충분히 상품성이 넘치는 기가 막힌 맛이었다. 요리사 26년째지만 처음 느끼는 맛이었다.

보통 더덕은 3년 이상 땅 속에 있으면 썩거나 녹아 없어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곳 정선은 10년까지는 문제가 없다. 정선에서도 사북 지역은 일단 고랭지이고 영양분도 풍부하기 때문에 3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보낸 더덕의 주름을 보면 유난히 자글자글하고 깊다. 이런 경우 요리할 때 여러 어려움이 생긴다. 주름 사이사이 흙이 제거가 어렵고 껍질을 제거할 때 많은 부분에 손실이 생기게 된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조직이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두들겼을 때 황태포처럼 펼쳐진다.

혹시라도 내가 산 더덕이 두드릴 때 포슬포슬한 느낌보다는 깨지는 느낌으로 수분감이 있다면 3년 이하짜리라고 생각하면 맞다. 일단 주름이 적거나 없고 조직이 세밀하지 않아 두드리면 다 부서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겨우내 언 땅 뚫고 나온 ‘더덕’ 품질이 최고… 어떤 소스와 만나도 ‘찰떡궁합’

강레오 ‘식탁이 있는 삶’ 상무이사



<강레오 ‘식탁이 있는 삶’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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