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 닫아거는 세계

2019-09-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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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은 지난주 중미 이주자 행렬 ‘캐러밴’의 미국 망명신청을 차단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난민정책에 ‘합법’ 판결을 선사했다. 그보다 며칠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수용 난민 숫자를 다시 대폭 감축할 플랜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소식도 알려졌다. 난민수를 아예 제로로 만들고 비상시에만 대통령이 특별 허용하도록 하는 제안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최근의 바하마 허리케인 이재민에 대한 임시보호지위(TPS) 거부 방침도 밝혔다.

거의 모든 난민과 망명신청자에 국경을 닫으려는 트럼프 정책들이 계속되면서 국제 난민보호 관계부처들의 미국을 향한 비판도 잇닿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대법원 판결에 즉각 유감을 표명했고, 인권단체 국제난민(RI)의 에릭 슈와츠 회장도 “보호가 필요한 난민들은 급증하는데 그들 지원의 세계적 리더였던 미국의 역할이 사라져버렸다”고 개탄했다.

세계 난민은 2차 대전 이후 최대치로 증가, 지난해 말 약 7,000만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세계가 문을 닫아걸고 있다”란 제목의 최근 기사에서 악시오스는 난민을 포용하는 곳은 부유한 서방 선진국들이 아닌 접경 주변국들인데 그들마저 경제 악화 등 국내 사정으로 저마다 빗장을 채우려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 중인 나라는 터키다. 이웃 시리아 내전 악화로 300만명 이상의 난민 수용을 위해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지만 “이제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하고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터키정부의 정책 변경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RI의 하딘 랭은 말한다. 난민 일부는 이미 시리아의 교전지역 이들립으로 되돌려 보내졌고 일부는 이스탄불 등 대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강제 이주됐으며 위협과 구금 등에 시달리는 난민들도 상당수다.

미얀마의 ‘인종청소’로 갈 곳 없는 100만 로힝야 난민들을 수용해 국제사회 찬사를 받았던 방글라데시에서도 2년이 지난 현재,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 강제조치 없이 자발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유책은 아무 성과를 못 본 채 강제송환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정치·경제적 위기에 휘말린 베네수엘라 난민 140만명을 받아들인 컬럼비아의 고민도 심각하다. 페루, 에콰도르, 브라질 등 다른 주변국들이 베네수엘라 난민 입국을 훨씬 어렵게 해 컬럼비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최근 보고타에서 돌아온 랭은 전한다. 진짜 위험은 비등점에 달한 컬럼비아도 정책 변경을 결정 중이라는 사실이라고 그는 우려한다.

난민의 기록적 증가를 초래한 세계 곳곳의 갖가지 ‘위기’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한 번 떠나온 난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데, 국제사회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과거 인도적 리더십을 상징했던 국가들은 이제 다투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그 선두에 트럼프의 미국이 서 있긴 하지만 문을 닫아걸기는 유럽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와 다른 것은 선동적인 외국인 혐오 발언을 자제하는 한편 “협상을 통해 터키 등 주변국들에게 그 궂은일을 시키는 것에 상당히 유능하다”고 이주민 유엔특별보고관을 역임한 프랑수와 크레포는 지적한다.

자연재해와 전쟁, 정치적·종교적 박해와 폭력, 경제적 빈곤을 피해 집을 떠나 국경을 넘는 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급증하고 있으나 이들의 설 자리는 날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2019년의 현실이다. 오늘 개막하는 제74차 유엔총회는 심화되는 자국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인도적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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