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뭔가 혼란스럽고 사람이 자주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제대로 본 것이다. 2019년 9월 10일 현재 트럼프 행정부 내 주요 공직자 교체율은 77%에 이른다. 레이건 행정부 첫 4년을 제외하고는 역대 행정부 중 가장 높다. 트럼프 임기가 아직 1년 반 가까이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레이건을 넘어설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잘리는 사람 수도 많지만 잘리는 방식도 다채롭다.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은 LA에 있는 FBI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TV 뉴스를 보고 해임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해임 사실을 본인보다 언론에 먼저 알린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도 비슷하다. 공무로 아프리카 순방 중에 트럼프의 트위터를 보고 해임됐음을 알았다. 출장 중인 공직자를 트위터로 자른 것은 트럼프가 처음일 것이다. 코미는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클 플린의 비리를 덮으라는 트럼프의 명령을 거절해, 틸러슨은 트럼프를 “바보”라고 부른 사실이 밝혀져 이런 수모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또 주요 공직자를 최단 시일 내 자른 기록도 갖고 있다. 길어야 몇 달, 짧게는 며칠만에 해임된 사람도 여럿이다.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 백악관 커뮤니케이션 국장이었던 앤소니 스카라무치, 비서실장이었던 레인스 프리버스,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탐 프라이스 등이 그들이다.
교체 공직자 명단에 추가할 사람이 생겼다.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던 존 볼턴이다. 볼턴은 10일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사표가 아니라 자신이 해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거짓말의 질과 양으로 봐 볼턴이 트럼프를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볼턴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문제로 트럼프와 충돌하면서 사임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 중의 군인’으로 평가받는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방관이 동맹국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할 수 없다며 사표를 낸 것과 비슷하다.
트럼프가 아프간 철군을 내년 선거에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내세우려고 캠프 데이빗 별장에 탈레반 지도자들을 불러 평화협상을 하려 했는데 볼턴이 이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협상은 탈레반의 테러로 결국 무산됐다.
볼턴의 사임을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좌파다. 이들은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미 북한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볼턴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김정은이 영변 하나를 내주고 대북 제재를 풀려하자 북한에는 그곳 말고도 핵무기 제조시설이 여럿 있다며 이를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그이기 때문이다.
볼턴은 그전에도 ‘리비아 모델’을 제시하며 선 폐기 후 보상을 주장하던 사람이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택했던 이 모델은 결국 카다피의 몰락으로 끝났고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결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
한국 좌파는 볼턴 퇴장이 성공적인 미북 회담 재개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으나 정작 그렇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공화 민주당이 드물게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는 북한에 속지 않겠다는 것이다. 핵을 폐기하는 척하고 보상을 받아내려는 북한의 술책은 적어도 워싱턴에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한국 좌파는 헛꿈에서 깨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