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형평과 우수

2019-09-07 (토)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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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잠을 많이 설쳤다. 그 시간 한국에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개최 여부로 논란이 한창이었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가 미국 동부지역 시간으로 일요일 밤에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증인 채택 문제에 여야 간에 합의가 되지 않아 결국 9월2~3일에 열기로 합의했던 청문회가 예정대로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조국 후보자가 기자간담회를 열겠다고 발표하고 간담회를 시작한 시간이 동부시간으로 새벽 2시20분경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중간에 몇 번 쉬는 것까지 포함해 장장 11시간 동안 그 간담회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보다 졸다 했다. 다음 날이 노동절 휴일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날 밤 잠을 설친 여파는 이번 주 내내 계속되고 있다.

아마 한국에서 장관 후보자를 놓고 이렇게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조국 후보자의 현 정권 내에서의 위상과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법무장관 임명 실패가 현 정권의 조기 레임덕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임명권자나 반대자들이 모두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이번의 논란은 교육위원인 나에게 ‘형평과 우수’(Equity and Excellence)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에서 인기 절정을 누렸던 ‘스카이 캐슬’ 드라마도 새삼 생각나게 했다. 그 드라마는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이 유발할 수 있는 여러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밝혀진 조국 후보자 자녀들의 스펙 쌓기를 두고 ‘조카이 캐슬’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조국 후보자 자녀들의 스펙 쌓기를 보면서 그 적정한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라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식 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직장을 갖기도 하고 집을 팔아 비용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의 노력이 불법 행위나 룰을 위반하는 행위까지 포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위 잘 나가는 부모들이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해 자녀들에게 여러 기회를 마련해주었다면 그것을 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든 학생들에게 항상 똑같은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 체제가 아닌 이상 어떻게 부모들의 노력을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과연 막는 게 옳은 일일까.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기회가 똑같아야 한다면 아마도 모든 사설 학원과 가정교사 고용도 금지해야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비용 부담이 어려워 그렇게 못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악이나 운동 레슨도 형평성 원칙에 따라 금하든지 아니면 정부가 모든 학생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할 것이다.

방학 기간 동안의 캠프 참여도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와 같은 우수한 학교나 영재교육 학교도 문을 닫아야 한다. 그 학교에 못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형평성을 고려해서 말이다.

사실 최근 뉴욕시에서는 시장이 구성한 자문그룹이 뉴욕에서 가장 선별적으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학교들을 없애자고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한 학교들은 거의 백인과 아시안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교들이 갈수록 인종적, 경제적 배경에 따라 분리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는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에 있어 형평성 뿐 아니라 우수성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때 과연 학생들 사이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우수함을 추구하는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느냐는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형평과 우수’ 둘 다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 두 개념이 상충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음을 느낀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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