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봇 심판’

2019-09-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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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의 4번 타자 코디 벨린저는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 항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경기 중 심판의 판정이 맘에 들지 않아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런 벨린저가 얼마 전 메이저리그 경기서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다. 라이벌인 LA 에인절스와의 경기 8회 타석에서 확연히 볼로 보이는 투구 2개가 연속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서 삼진을 당하자 이에 항의하다 퇴장명령을 받은 것이다. 문제의 투구는 누가 봐도 볼이었다.

야구에서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은 가장 잦은 시빗거리다. 포수 뒤에서 가상의 스트라이크 공간 안으로 공이 들어오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베테런 심판들로서도 쉽지 않다. 경계선에 걸친 공들은 더욱 그렇다.

TV중계로 경기를 보면 심판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심판임에도 한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또 잘못된 판정 하나로 경기의 흐름이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적이 곧 돈인 프로경기에서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지난 7월 열렸던 독립야구리그 ‘애틀랜틱리그’의 올스타전에 사상 처음으로 ‘로봇 심판’이 등장,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했다. 물론 로봇 심판이라고 해서 진짜 로봇이 포수 뒤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레이더 추적기술로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한 후 무선 이어폰으로 주심에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전달과정에 약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선수들, 특히 투수들이 큰 만족을 나타냈다.

애틀랜틱리그는 이후 계속해 로봇 심판을 사용하고 있으며 메이저리그는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로봇 심판은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만큼 당장 경기장에서 주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로봇 심판이 야구의 미래임을 메이저리그도 굳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바람은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축구계에까지 불어오고 있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팬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인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은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이 마지막 경기서 강호 독일을 2대 0으로 침몰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VAR 덕분이었다. 부심이 오프사이드로 판정한 골이 VAR 판독을 통해 인정된 것이다.

VAR이 확산되고 팬들도 호의적 반응을 보임에 따라 국제축구연맹은 아예 부심을 VAR로 대체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부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오프사이드 판정.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기보다 수십 개의 눈을 가진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판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찬반양론이 있지만 일단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특별 부서까지 설치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지만 심판도 인간이기에 판단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다소 낭만적인 합리화로 이를 두둔해온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보다 더 정확한 판정을 내려줄 테크놀로지가 있는데 굳이 인간의 판단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스포츠의 기본적 가치가 공정성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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