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86 몰락의 시작

2019-09-05 (목)
작게 크게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분실 509호에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의 조사를 받던 박종철은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상이 폭로되면서 20대 학생들의 분노도 폭발했다. 당시 싸움은 민주화세력 대 군부독재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대결이기도 했다. 당시 기성세대는 경찰과 군, 검찰과 언론, 청와대와 정부, 국회와 재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가 가진 것이라고는 진실과 도덕적 권위뿐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젊은 학생들이 군부독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 봤다. 그러나 6월 항쟁이 계속되면서 ‘넥타이 부대’라 불리는 직장인들과 중산층이 이들 편에 서기 시작했다.
집권층에서도 균열이 일어났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노태우의 6.29 선언이다. 이와 함께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30대가 되면서 90년대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소위 386세대는 한국의 주류세력이 됐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30년 전 일어났던 일이 되풀이 되려 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된 이들 386에게 20대가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태를 촉발시킨 것은 386세대의 대표주자인 조국이다. 온갖 아름다운 말로 가난한 청년들의 대부 역할을 해온 그 삶의 행적이 말과 달랐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정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지키려는 386세대의 노력은 간절하다 못해 애처롭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출현해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대 학생집회에 “뒤에서 자유한국당 패거리들의 손길이 어른어른하는 그런 것”이라며 비웃었다. 과거 독재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위를 보고 “극소수 불온세력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매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조국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이라며 “조국만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었던 그런 소위 명문대학 출신의 많은 기자들이 분기탱천해서” 조국을 비판한다고 했다. 조국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진 것은 없으면서 질투심에 눈먼 집단이 돼 버렸다.

이것이 소위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꿈꾸며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자 현재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의 수준이다. 하기야 2010년 “천안함의 북한 폭침은 소설”이라고 주장한 후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 없는 사람에게서 무얼 기대하겠는가. 유시민이 조국의 뒤를 이어 서울대생에 의해 ‘가장 부끄러운 동문’ 2위로 뽑힌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서점에는 30년 간 이념의 노예가 돼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실제로는 위선 덩어리인 386 세대를 비판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386세대 유감’ ‘평등의 역습’ ‘공정한 경쟁’ 등이 그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70%, 장차관 공직자 63%, 국회의원 48%가 소위 386 세대다. 한마디로 권력기관의 노른자는 모두 이들 차지인 셈이다. 반면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젊은 20대는 가진 것이라고는 진실과 도덕적 권위를 빼고는 없다.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세월을 이기는 세대는 없다. 선배로서의 도덕적 권위를 잃은 세대는 더욱 그렇다. 자신들의 상징인 조국에 모든 것을 건 386의 몸부림은 수십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이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