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제차, 일제차, 국산차

2019-08-31 (토) 12:00:00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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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온 우리 코리언들은 여러 가지 문화충격을 겪게 된다. 그 가운데 뺄 수 없는 것이 자동차 운전이다. 요즈음 미국에 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운전만은 한국에서보다 더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80년대 이민자들은 모여 앉으면 운전과 관련된 실패담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교통사고’는 났다 하면 쓰라린 ‘고통사고’가 되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그랬다. 운전면허를 첫 번 얻고 구입했던 차는 ‘포드’(Ford) 곧 미제였다. 그것도 중고차였다. 보험료도 쌌지만 행여 사고라도 나서 차를 깨먹으면 웬만한 것은 자비로 고칠 셈을 했다. 게다가 미국의 영주권자가 되었으니까 미제 자동차를 쓰겠다는 애국심도 생겼다.

그러다가 ‘현대차’가 미국에 들어오면서 내리 세 번을 현대차를 타고 다니며 목회를 했다. 고장도 자주 난 편이었지만 그래도 불평 없이 ‘국산품 애용’ 정신을 이어 나갔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동포들과 특히 교회 성도들의 이목도 의식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의 직장생활과 세 아이들 학교 픽업 때문에 자동차 한 대를 더 사야 했다.
고민 끝에 일본제품인 ‘혼다’를 구입했다. 교회 성도들의 거부반응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최종결정까지 좀 망설였다. 그래도 그 때는 한인교회 목회자들 사이에 ‘도요타 캠리’가 몇 퍼센트나 주차되어 있느냐로 그 교회 성도들의 재력을 가늠하던 시절이었다.
“목사님, 국산차나 일본차 구별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타세요. 뭐 그런 차들이 대체로 미국산인 걸요.”

그렇게 위로하는 성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무거웠다. 초등학생 때부터 악을 쓰며 외쳤던 ‘왜색일소’(倭色一掃, 일본색깔 싹 지우기)가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때 세뇌된 일본 증오심이 의식표면에 떠오른 것보다 더 찐했던 것도 같다.

2001년도 남가주교회협의회 회장 때였다. 서울시 교협과 공동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한국 분단과 6.25 전쟁 피해의 상당한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는 ‘남북통일선언문’을 발표했었다. 일본의 지배가 없었더라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이 좀 든 탓일까, 미국 시민권자가 된지 30년이 넘은 까닭일까, 지금은 일본과 한국이 되도록 우호적 협력관계를 이루기를 기대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 때 위안부 보상문제로 10억엔을 일본에서 받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일제강점기 노동력 착취에 대해 배상하라고 한국 대법원이 판결했다. 꼭 무슨 앵벌이들 행동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 무얼 또 돈으로 보상하라는 것일까.

일본의 사과가 부족하다면 재발방지를 위하여서라도 일본의 딱 부러진 사죄를 받아낼 필요는 있다. 하지만 돈으로 보상하라는 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자존심을 또 한 번 짓밟는 일이 아닐까.

최근에 자동차를 바꾸었다. 9년간 16만 마일을 타고 다녔던 도요타 캠리를 정리하고 현대 소나타를 구입했다. 그것도 2만 마일 가량을 돌아다닌 중고차였다. 그런데 우리 집 주변에 현대차와 기아차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어가고 있다. 아직 이 실비치은퇴촌에 현대차나 기아차를 타는 일본인들이 있는 지에는 정보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대차를 타는 사람들이 백인도 있고, 인도인도 있고, 필리핀인도 있고, 물론 코리안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북조선과 미국의 외교관계가 어서 속히 좋게 매듭지어지기를 희망한다. 북조선 상품이 미국에 물밀 듯이 들어오고 미국산 상품들도 평양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날이 곧 왔으면 얼씨구 좋겠다. 맥도널드 평양점 개업은 언제쯤 성사될까. 또 북조선 자동차가 미국에서 판매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좀 고장이 잦더라도 한 대쯤 사서 씽씽 몰고 다니는 날이 어서 속히 와야 하는데…

<이정근 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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