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머릿속의 메아리

2019-08-30 (금) 12:00:00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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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까지 지나니 아침 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습도까지 낮아서 산에 오르기 완벽한 날씨. 이런 날에는 한 시간만 달려가면 안길 수 있는 애팔레치안 산맥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가슴이 답답한 날, 산 정상에서 크게 ‘야호~’ 외치면 마음이 새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어릴 적 산에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산 정상에서 ‘야~호’ 외치면 정직하게 ‘야~호오오’하며 돌아오는 메아리가 참 신기했다. ‘바보야~’ 외치면 나한테도 ‘너도 바보야~’라도 돌려주고, ‘너 예쁘다’하면 ‘너도 예쁘다’라고 말해주던 메아리. ‘내가 세상을 보고 웃어야 세상도 나를 보고 웃는다’고 말하던 한 교수님의 음성이 겹쳐진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문득 ‘사람 머리 속의 메아리는 참 끈질기네’란 생각을 했다. 과거에 양육자나 선생님, 또는 친구가 던진 메시지, 특히 부정적 메시지는 우리가 실수할 때마다 우리 머리 속의 메아리로 환생해서 현재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해석이나 이미지 같은 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고 부른다. 의식을 해서 떠올리는 게 아니라 순간 머리 속에 울려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수다 중에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니 왠지 분위기가 어색한 걸 느낄 때 ‘내 흉을 봤나’하고 생각하든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난 왜 이 모양일까’ 등 인식 전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다. 배우자나 부모님이 화난 표정으로 앉아있을 때 ‘내가 또 뭘 잘못했나?’란 생각이 툭~ 올라온다면 그것이 바로 자동적 사고다.

자동적 사고는 어린 시절 부모나 양육자에게 들었던 말들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아있는 메아리 같은 것이다. 일부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일부는 왜곡된 신념이나 역기능적으로 만들어진 생각의 틀(도식-schema)에서 떠오르기 때문에,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비현실적 사고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머리 속에서 울리는 부정적인 메아리로 인해 우울해하고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감정은 생각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그에 따른 행동 반응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화가 났거나 기분 나빠 하는 표정을 보고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해석하면 불안해지고, ‘나랑 있는 게 싫은가 보네’라고 해석하면 우울하고 슬퍼지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라고 해석하면 궁금하거나 측은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자기 방식의 자동적 사고를 갖고 있다. 내가 불편한 상황에 닥칠 때 어떤 자동적인 사고가 튀어나오는지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파악할 수 있다.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가 많을수록 걱정과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걸릴 확률이 많다. 그 자동적 사고와 왜곡된 생각을 인식하고 수정하는 방법으로 인지행동치료(CBT)가 널리 쓰인다.

원리는 이렇다. 부정적 감정이 생긴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고, 그때 내게 떠오른 나의 해석, 곧 자동적 사고를 적어본다. 그리고 그 해석이 진짜 사실인지, 아니면 나의 추측인지, 왜곡된 생각이거나 비현실적은 아닌지’ 차분하고 면밀히 분석해보는 것이다.

인생은 해석하기에 달렸다. 다른 이의 행동이나 어떤 사건이 나의 감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의 해석이 나의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에, 해석을 바꾸면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직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다면, 이제는 그 메아리를 멈추게 할 힘이 현재 나에게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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