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과 대화하기 어려운 이유

2019-08-2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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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은 지난 주 김 전 대통령 관련 기록 2,000여건을 묶어 ‘김대중 전집 2부’를 발간했다. 전집은 김 전 대통령 청년시절부터 1997년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의 각종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전집에는 김 전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1953년 청년 시사평론가 김대중이 ‘한일 우호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이 글에서 김대중은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음으로써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의 유신 선포 후 10개월여 동안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반유신 투쟁을 전개하던 당시 작성한 친필메모에서도 일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일본은 지배냐 종속이냐 밖에 모른다”는 것이 김대중의 기본인식이었다.

요즘 한일관계를 지켜보면서 김대중의 통찰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일본은 자신들의 태도를 시정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두 나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마치 한국을 지배하려는 듯 말이다.


지배 아니면 종속이라는 이분법은 평등의 가치를 부정하는 아주 위험한 사고체계이
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서 올려다보는 관계에서 같은 눈높이로 상대를 바라보고 대화하는 자세는 기대하기 힘들다. 현대사를 포함해 일본의 역사를 관통해온 것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문화였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일본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도 일본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일본 민주주의의 후진성이다. 잘 알다시피 전후 일본을 집권해 온 세력은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향수를 가진 극우 자민당이다. 자민당 아닌 정치세력이 집권한 시기는 채 6년도 되지 않는다. 사실상의 일당독재이다. ‘천황제’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예속을 상징하며 ‘군국주의’는 지배의 이데올로기다. 일본은 지배와 종속밖에 모른다는 관찰이 딱 들어맞는다.

외형적으로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다. 내각제를 기본으로 선거를 통해 민의를 묻는 등 겉으로는 민주주의 체제가 안착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지난달 아베가 개헌동력을 확보하겠다며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을 선언한 직후 치러진 선거의 투표율은 불과 48.1%였다. 선진 민주국가의 투표율로 보기 힘들 정도로 낮다.

또 번호나 기호에 표시해 지지후보를 고르도록 하는 다른 나라들의 투표방식과 달리 일본 유권자들은 일일이 지지후보 이름을 한자와 히라가나로 적어야 한다. 오자가 있으면 무효표로 처리된다. 이름이 친숙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이다.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편한 방식임에도 일본 극우들은 궤변으로 이를 옹호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다. 시오노는 영웅중심의 전체주의적 역사관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녀는 몇 년 전 펴낸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고대 아테네의 민회 투표용지가 일본과 같은 기명식이었다며 “자기가 뽑을 후보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의 기표방식을 ‘중우정치’로 깎아 내렸다.

시오노는 2016년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피폭 피해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지 않고 무언으로 조용히 오바마를 맞이하는 게, 단언컨대 일본의 품격이 높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작 자신들이 ‘중우정치’를 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그렇다고 폄하하고, 더 힘센 존재의 눈치를 보면서 피해자들의 입을 ‘품격’이라는 명분으로 틀어막으려 하는 게 일본 극우의 실체이다.

일본은 국민들의 깨어있는 힘으로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이뤄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저 지배세력은 이끌고 국민들은 순순히 묵종해 왔을 뿐이다. 일본과의 대화를 정말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강함이 아니라, 도무지 수평관계로 설 줄 모르는 그들의 평형감각 결여와 후진적 의식세계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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