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 민중)와 크라티아(Kratia, 권력)의 합성어인 ‘데모크라티아’가 민주주의의 어원이다.
고대 민주주의의의 꽃으로 불린 아테네 출신의 철인 플라톤은 정작 이 ‘데모크라티아’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다수의 폭민(暴民)에 의한 중우정치로 정의를 내릴 정도로.
이와 함께 플라톤은 이런 정치적 명언을 남겼다. “정치를 외면하는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통치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배제된다. 대신 자격미달의 인물들이 정치를 좌우했을 때 그 국가사회에 어떤 환란이 닥쳐올지를 경고하기 위해 한 말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찬란한 문화와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정복당한 사건으로 보인다. 국력과 문화수준, 인구수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세했다. 그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59-404)에서 스파르타에게 패배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한때 찬란하던 아테네의 민주체제는 그 무렵 심하게 왜곡되고 부패했다. ‘다수의 이름’으로 행해진 정치행위라는 것은 불합리하고 저질적인 정책이기 일쑤였다.
그 정황에서 아테네 민주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사람들은 지적능력이나, 지도력, 그리고 인격에서도 한참 모자라는 인물들뿐이었다.
그런데다가 그 무능한 인물들은 스파르타 군이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입씨름에 데마고그(대중선동)만 일삼았다. 적군 내침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그 종착역은 아테네의 패망이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일본의 아베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일본정부의 그 조치가 간교하다. 아주 얄밉게도 보인다. 그러나 예상되던 일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일본의 수출규제를 촉발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 국제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그도 모자라 반일 프레임 설정과 함께 일본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일관해왔으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일본과의 경제전면전을 앞둔 상황이다. 그러므로 정작 중요한 것은 전쟁승리의 비책이다. 그 방책은 있는 것인가. 대비책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혔다.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 한동안 침묵모드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어 한 말이다.
잇단 북한의 미사일도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남과 북,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일본을 타도할 수 있다’는 비책(?)을 발표한 것이다. 관제 민족주의를 동원한 줄기찬 반일무드 조성과 함께.
그 한마디로 본전이 드러났다고 할까. 속이 보이는 졸견(拙見)에, 무책임한 정치행태. 플라톤이 혐오한 아테네의 중우정치와 너무나 흡사하다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