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영화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 영화는 나오기 전부터 ‘훈민정음의 길’이란 책을 낸 출판사로부터 “원작자의 동의 없이 영화를 제작했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영화상영 직전인 지난 7월 23일 신미 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이 책 이전에도 존재했으므로 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며 가처분을 기각했다.
이로써 영화가 개봉되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이 영화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자 발명에 열을 올리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산스크리트어(범어)에 정통한 신미라는 중이다.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지키고 있던 그는 ‘조선은 이제 유교의 나라이니 필요 없어진 팔만대장경을 불교국인 일본에 달라’는 일본 승려들의 요구를 유창한 범어로 단번에 물리쳐 버린다.
이를 계기로 세종과 만나게 된 그는 표의문자인 중국어를 연구해 봐야 한글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표음문자인 산스크리트어의 원리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이에 감탄한 세종은 신하들 몰래 그에게 한글 창제의 책임을 맡기고 그는 이를 이뤄낸다. 최초의 한글서적인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등이 모두 불교서적인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시작하기 전 영화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한글 창제를 둘러싼 가설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선 조선시대 천민 신분인 일개 중이 최고 권력자인 세종과 맞먹으며 때로 왕을 꾸짖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이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세종대왕 혼자 독창적으로 만든 것으로 돼 있던 한글 창제에 인도의 산스크리트나 몽골의 파스파 문자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신미라는 중이 처음부터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 따르면 세종이 신미의 이름을 들은 것은 한글이 반포된 1446년, 처음 만난 것은 1450년이다. 실록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신미가 훈민정음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면서 파스파 문자를 비롯 다른 민족의 언어체계를 연구했다는 주장은 해외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학자로서는 드물게 이 문제를 폭넓게 연구한 정 광 고려대 국문학 명예교수에 따르면 몽골 파스파 문자는 한글 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 첫 단계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훗날 산스크리트 문자를 참고로 해 모음 11자를 만든 것은 사실이라 주장했다. 1443년 만들어진 최초의 훈민정음은 모두 자음으로 모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이라는 책에서 세종 대왕과 학자들이 중국어는 물론 북방과 남방 등 아시아 전역에 걸친 언어들을 연구했으며 이를 참고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100년 동안 사실상 몽골 지배하에 있던 고려는 몽골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많았으며 그 중 한 명이 집현전 학사 신숙주다. 한자와 달리 표음문자인 파스파 문자를 한글을 만드는데 참고했다고 해 가장 우수한 문자로 평가받는 한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랏말싸미’가 한글 창제의 진실을 밝히는데 기여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