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⑧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

2019-07-26 (금)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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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⑧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

이곳을 걷는 며칠간, 산 정상에 쌓인 거대한 얼음산들이 쏟아내는 예리한 푸르른 빛을 볼 때마다 자연에 대한 경건함, 숙연함과 장엄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⑧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

산의 몇 배 되는 곡괭이로 한방에 산을 반쪽으로 쪼개 놓은 듯한 산의 모습. 무너져내리고, 깎인 산이 아니고, 깔끔하게 하루아침에 반 토막이 난 모습이다.



예약없이 도착한 호텔 로비 카우치에서 하룻 밤 지내
토레스 델 파인 산 정상은 거대한 3개 바위 봉우리 사이로
빙하가 덮혀있고 그 밑 호수엔 에메랄드 빛 빙하 녹은 물이
누구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운 마음 가졌으면

<2019년 1월1일 >
마지막 산. 토레스 델 파인을 올라가기 위해 어제 최종 목적지인 라스토레스 동네에 저녁 9시 도착했다. 물론 어디서 잘 지도 모르는 상태로. 이 동네엔 호텔이 하나 밖에 없다. 이 호텔에서 걸어서 30분 쯤 거리에 캠핑장이 하나 있긴 하지만, 물론 캠핑 사이트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12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기진맥진해서 캠핑장에 가서 자리가 있나 기웃거릴 바에는 이왕이면 호텔이 낫겠다 싶었다.


호텔 식당에서 거나하게 저녁을 먹고 예약을 못했지만 빈 방도 없고 하여 호텔 매니저에서 사정을 이야기 하여 로비 카우치에서 하룻밤을 자는 행운을 얻었다. 여길 들어 올 때부터, 내 눈에 확 트인 호텔 로비의 카우치를 보고 예약 취소된 방이 없다면 저기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내 생각하고 딱 맞아 떨어졌다.

호텔 신세를 많이 지고, 산길을 따라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토레스 델 파인 정상을 향하여 5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올라 갔다. 오르다 밑을 내려다보면 끝도 없는 벼랑 길. 산에 다니면서 수시로 만나는 낭떠러지 길, 겁이 나서 어지간하면 아래를 안 보려고 애를 쓴다. 걷다가 아래를 보면 멀쩡하게 잘 걷던 다리가 풀릴까 봐. 칠레노 산장을 지나면서 눈보라 안개 속에 Torres Del Paine이 보인다.

가까이 많이 왔다 싶어 위를 올려다보면 저~~아주 멀리 바위 산 트레일 위로 가물가물하게 개미들 모양 사람들이 줄지어 바위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언제 저 높은 곳까지 갈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안다. 그냥 걷다 보면 언젠가는 거기에 가 있는 게 산행이라는 걸. 그냥 걸었다. 눈이 내리면서 바람이 부니 앞이 가물 가물거린다. 드디어 거대한 바위 산 언덕을 넘어서니, 몇 년 동안 목 메이게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정상이 웅장하게 내 눈앞에 나타난다. 뭐랄까, 세상에 이런 웅장한 자태도 있을까 거대한 3개의 바위 봉우리 사이로 빙하가 덮혀 있고, 그 밑 호수엔 빙하가 녹은 물이 에머랄드 빛을 내고 있고, 하늘엔 하얀 눈보라가 휘날리는 기가 막히게 웅장한 광경이 펼쳐진다.
빙하가 덮힌 바위 산 토레스 델 파인. Torrea Del Paine, 그 밑에, 아니, 눈보라 치는 하늘 밑. 산 정상에 조신하고 얌전하게 있는 에머랄드 빛깔의 호수.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에서 빙하 시기의 한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숨막히게 장엄한 자연의 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 가야 될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 속에 서 있으면서 내가 그 자연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미물 인가를 다시 느끼며 평안한 마음을 갖는다. 도시의 화려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편안함을 느끼겠는가. 하느님이 만든 지구 중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이곳에 와서 그 흔적을 보고 즐기는 감격. 4시간을 내려오면서도 가슴은 계속 떨렸다.

보통 산행 할 때, 정상까지 왕복 10시간을 걸으면 올라갈 때 6시간 보다 내려올 때 4시간이 더 힘들다. 올라갈 때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온 힘을 다 해서 올라가지만, 내려 올 때는 힘은 덜 들어도 지루하다.

사람들이 여행을 거창한 행사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루, 이틀, 아니면 반나절이라도 내 하던 일을 비켜서서 어느 곳이든 나를 위해 떠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어디 간다하면 여행사부터 찾지 말고 인터넷 검색해 보면 쉽게 다녀 올 수 있는 데가 너무 많다. 다른 말로 하면, 젖먹이들 젖 뗄때 아주 조그만 이유식 숟가락으로 아기들 떠먹이듯 먹이는 게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고, 자유 여행은 한참 크는 청소년들 밥 먹을 때, 양재기에 다 쏟아 놓고 비벼서, 주걱같은 숟가락으로 퍼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어차피 어딘가 한번을 간다면 마음껏 퍼 먹고 와야 되지 않을까 싶다. 하던 일을 약간만 포기하는 마음이면 시간이 난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을 다 하고 나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매일 매일의 “일상”들이 내 “일생”이 되어 버린다는 걸, 숨넘어가는 순간에 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나도 지금도 이 말을 하고 산다. “나는 그럴 수 있다” 까지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내가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디에 갇힌 죄수도, 수족이 불편해 마음대로 나들이를 못 하는 사람도 아니다. 결정하면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인이다. 나도 그럴 수 있다 하고 나를 풀어놔 주면 어떨지. 내 자유는 내가 주는 것이다. 이 글은 파타고니아 여행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쓴 게 아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여행에서 느낀 점>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은 (1)파타고니아를 걷기 위해서는 해발 600~800m 높이의 산을 5일간 배낭을 메고 걸어야 되기 때문에 산행 경험이 있거나, 체력이 뒷바침 되어야 한다는 점. .(2)가이드를 따라 가면 먹는 문제, 자는 문제가 해결 된다.(침낭이 제공 된다/산장= Lodge 혹은 Refugios라고 하는 숙소. 텐트) 식사도 중간 중간 산장에서 사 먹는다. 본인이 텐트, 침낭, 음식을 메고 다니지 않으니까 훨씬 수월하다. 단지 본인이 이것들을 다 갖고 다니면, 며칠간 캠핑장 사용료 24달러 정도면 되는데, 여행사를 통해서 가면 1,500 달러 정도가 드는 걸로 알고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W 트렉만은 어찌하든 꼭 가 봐야 되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3)혼자서 이곳에 가면 좋은 점은 기가 막힌 경치이나, 분위기에 따라 마음대로 시간 조절을 하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이지만, 어지간해서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좋은 여행 시기인 11월 말부터 3월 초까지이고 기후 변화가 심하기로 유명하지만, 그곳은 여름이므로 크게 애를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는 점. 하루에 4계절을 겪는다는 지역이다.

<자연은 변화를>
검게 탄 내 얼굴을 쳐다보면 내가 산행을 좋아하고, 태양에 많이 노출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설원을 다녀온 후 나는 더욱 검게 탔다. 눈과 빙산은 여름 햇살에 반사되어 그렇찮아도 검은 내 얼굴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나는 서울에 살 때부터 산을 좋아해 우이동 골짜기를 드나들었다. 미국에 와서 식당업을 하면서 수요일 이른 새벽에 친구들과 캐츠킬로 산행을 간다. 등산이 계속되면서 ‘더 높은 곳, 더 깊은 곳, 도전적인 땅’으로 가고 싶고 나의 체력과 용기, 지구력을 시험하고 싶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아이슬란드 빙하 트레킹,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가장 힘들고 위험한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은 자연에 대한 갈증의 정점인 것 같았다. 잎으로도 꾸준히 트레킹은 즐기겠지만 위험한 고난도 여행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자연과 친해 지면서 사람의 숲 보다 자연이 편안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숲에는 생존 경쟁 때문에 항상 갈등이 존재하지만, 자연은 항상 나를 나답게 해 주고, 편안하게 해 준다. 이번 여행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났다. 칠레인들은 순수하고, 도와주려고 애썼으며, 정직했다. 영어권 미국, 유럽 여행자들은 유머가 넘쳤고, 마음의 벽이 없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빙하 위에 먼지가 쌓인 걸 보았다. 이런 청정 지역에 먼지가 쌓인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유 여행은 저 먼지가 쌓이는 시간보다 짧게 살다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다, 무엇을 챙겨 가야 되는지를 생각케 해 준다. 내리는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얼음이 되고, 채 녹지 않은 그 얼음 위에 다시 얼음이 쌓이면서 몇 백, 몇 천 년이 되고,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빙하의 무게에 의해 산 밑으로 내려 앉으면서 다시 강과 호수, 바다를 만나 녹아 섞인 후에 다시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눈이 되어 땅 위로 되돌아오는 억겁의 긴 시간 속에 우리가 왔다 가는 찰나. 이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지금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 한지를 더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파타고니아의 빙하가 어른거린다. 온 세상을 삼킬 것 같은 바람의 공포 속에서, 텐트 안에서 벌벌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갔다 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이 많았기에, 흥분이 컸고, 성취감도 많은 것 같다. 앞서 말 한대로,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사를 통한 안락하고 비싼 크루스에서, 고급 와인 마시며, 편안하게 여행하기를 원치 않았다. 어디를 가나, 아주 적은 비용으로 가장 자연 속에 가장 가까이,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돌아와서 병이 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자유 여행 (Independent Travel)을 계획하는 분들에게는 사전 리서치를 충분히 할 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체력과 인내심에 맞는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첫 여행담을 들어준 독자에게 감사하며 간단한 여행 정보를 전한다.
혹시 자유 여행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제가 갖고 있는 경험을 공유할 생각이다. 이메일: restaurant@hanmail.net <끝>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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