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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장 문닫고, 소싸움장 백지화…‘개나소나’ 행복한 세상 열린다

2019-07-24 (수) 01:02:03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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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장 문닫고, 소싸움장 백지화…‘개나소나’ 행복한 세상 열린다

지난달 경남 창원에서 열린‘제18회 창원 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에서 소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2008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투견(개싸움)ㆍ투계(닭싸움) 등은 불법이 됐지만 소싸움은 예외적으로‘전통 소 싸움에 관한 법률’까지 만들어지며 10여개 지자체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박이’는 억세게 운 좋은 개였다. 한 중년 남자의 집에 살던 대박이는 지난 6월 말 주인의 손에 끌려 부산 구포 개고기 시장의 도살업소로 가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가 키우던 개를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그가 대박이를 데리고 들어간 첫 번째 도살업소는 며칠 전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고, 그는 할 수 없이 다른 도살업소를 찾아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그와 마주쳤다. 활동가들은 이미 도축돼 있던 지육(도살 후 머리와 족, 내장 등을 잘라낸 상태의 고기)을 주는 대신 이 남자가 끌고 온 개를 넘겨받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 개에게 활동가들은 대박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부산 구포 개고기 시장의 상인들은 개고기 소비가 점점 줄어드니 장사가 몇 년 못 버틸 거라 생각하면서도 생계수단이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가 수년에 걸쳐 부산시 공무원ㆍ시의원ㆍ국회의원 등을 만나 합법적으로 보상해주는 방안을 찾았고, 북구청에 개시장 철폐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다. 상인들은 폐업하는 대신 이전할 상가가 준공될 때까지 매달 313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받기로 부산 북구청과 합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달 1일 도살과 판매 등 모든 영업을 중단했다.

동물자유연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동물권행동 카라 등 여러 시민단체와 많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폐업을 이뤄냈고, 대박이를 포함한 개 86마리를 폐업 과정에서 구조했다. 개고기를 팔던 3,724㎡ 넓이 부지에는 반려견 놀이터와 동물복지시설, 주민 쉼터 등이 건립될 예정이다.


또 다른 기념비적인 사건도 생겼다. 전북 정읍의 소 싸움장 건설 백지화 결정이다. 정읍시는 ‘축산테마파크’를 만들어 그 안에 소 싸움장 도박장을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동물학대 소싸움도박장 건립반대 정읍시민행동’을 결성했고, 2017년 6월 시청 앞에서 소싸움 도박장 건립을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다. 한여름 땡볕, 비바람, 눈보라에도 멈추지 않고 2년여 동안 총 255회의 1인 시위를 했다. 결국 소 싸움 도박장은 백지화됐고, 정읍시가 추진하려 했던 축산테마파크는 전통놀이마당, 복합체험센터 등으로 구성된 ‘동물테마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소싸움은 소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콘크리트로 속을 채운 무거운 타이어를 끌게 하는 등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하고 초식동물인 소에게 미꾸라지, 뱀탕, 심지어 개소주까지 먹이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원치 않는 싸움을 인간의 도박을 위해 억지로 강요 받는 그 자체가 학대다.

200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도박이나 유흥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동물학대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투견(개싸움)ㆍ투계(닭싸움)는 불법이 됐고 소싸움 역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소싸움을 해왔던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단체들의 요구로 동물보호법의 동물학대 행위에서 소싸움만 예외가 됐다. 심지어 ‘전통 소 싸움에 관한 법률’까지 만들어져, 10여개 지자체에서 아직까지 소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왕이 죽으면 신하가 같이 묻히고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같이 묻혔던 순장제는 여러 문화권에서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야만의 역사로 기억될 뿐이다. 단지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용납될 수 있다면 인류는 노예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여우사냥도 전통이었으나 금지됐고, 스페인 투우 역시 동물학대로 간주돼 금지하는 도시가 늘고 있다. 소싸움 역시 부끄러운 동물학대로 인식돼 이 땅에서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구포 개고기 시장 폐업과 정읍 소싸움 도박장 백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개나 소나, 그 누구나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 시절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한 복판에 서 있다.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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