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딸네 뒷마당으로 ‘은퇴’

2019-07-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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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후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열흘 전 뱅크레이트가 발표한 올해의 최고 은퇴지역 순위에선 중서부 대평원의 네브래스카 주가 플로리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생활비, 건강, 기후, 문화와 범죄 등 삶의 여건을 조사해 평가 분석한 결과다.

그러나 인구의 85% 이상이 백인이어서 소수민들에겐 별로 ‘좋은 곳’이 아닐 수 있고 백인 포함 보통 미국인 대부분도 최고 은퇴지 순위에 따라 이사하는 것은 아니다. 은퇴지 선택의 중요한 요소인 내게 가장 필요한 것,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80세 게리 피터슨이 꼽은 최고의 은퇴지는 “딸네 집 가까운 곳”이었다. 최근 LA타임스가 “뒷마당에 사는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피터슨의 체험담은 건강도, 재정상태도 좋지 않은 은퇴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54년간 해로한 아내가 2016년 사망하자 피터슨은 아내와 함께 살아온 북가주의 목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에겐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딸네 집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최선의 해답이었다. 한 집에 사는 것은 서로가 불편할 테니 20마일 떨어진 고층 양로시설로 들어갔다. 넓은 목장에서 늘 이웃과 왕래하며 살았던 피터슨에겐 너무 외로운 삶이었다.

어느 날 그는 사위에게 “뒷마당에 세워둔 RV에서 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노인을 트레일러에 가두었다고 신고할 우려도 있어” 사위 단 로벗슨은 클리어필드 카운티 지역 노인서비스 비영리기관 CCAAA에 근무하는 친구와 상의했다. 이 기관이 제시한 대안이 뒷마당에 세울 수 있는 이동식 소형 주택 ‘에코 카티지’였다.

지난해 여름 피터슨은 딸네 집 뒤뜰에 세워진 에코 카티지에 입주했다. 침실, 리빙룸, 화장실, 부엌 등이 들어있는 800스케어피트 크기로 유틸리티와 주소는 딸네 가족과 공유하지만 완전히 사생활이 보장된 독립 공간이다. 주택가격 5만5,000달러는 주와 카운티 노인지원기금에서 지불되었고 피터슨은 자신 수입의 30%인 월 800달러의 렌트를 낸다.

이처럼 자녀가족과 한 지붕은 아니어도 한 마당에서 같이 산다면 아픈 부모의 간병은 물론 “외로움, 두려움에서 오는 무력감, 그리고 지루함 등 은퇴노인들의 세 가지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된다”고 CCAAA의 대표 캐슬린 길레스피는 설명한다. 노인이 사망하거나 요양원에 입주할 경우 소형 주택은 이 기관을 통해 필요한 다른 가족의 뒷마당으로 옮겨진다.

뒷마당 집이 전국 어디에서나 합법은 아니다. 주택가격 지원과 리스 여부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로벗슨 부부도 특별 조닝변경을 신청해야 했다. 캘리포니아 주가 2017년 부엌 포함 별채(ADU) 건축허용 법을 제정했으며 하와이, 테네시, 워싱턴, 일리노이 등이 뒤따르고 있다.

현재 미국인 5명 중 1명이 다세대(多世代) 대가족 가정에서 살고 있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의한 노인인구 증가와 병든 노부모 돌보기, 주거난 악화 등으로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는, 은퇴 후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이제 누구에게나 당면문제이며 미 사회는 “연령분리 세상에서 연령통합 세상으로 변하는 중”이라고 빌 토머스 박사는 말한다. 이 같은 노인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할머니 오두막이란 뜻의 ‘그래니 파드(Granny Pod)’로 불리는 초소형 이동식 주택이 최신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아들네, 딸네 뒷마당을 ‘최고의 은퇴지’로 꼽는 노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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