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뉴욕의 여러 뉴스매체에는, 4년을 끌던 친부 살해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34세 아들에게 유죄평결이 내려졌으며 8월에 있을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부자 아버지 덕에 놀면서 호화생활을 하던 아들은 아버지가 생활비 외에 매주 1.000달러씩 주던 용돈을 300달러로 깎은 데 분노해서, 밤중에 부모가 살던 아파트에 복면을 하고 들어가 아버지를 총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듣기 어려웠던 부모살해라는 흉악범죄가 왜 요즈음에는 자주 보도되는 될까? 인구 증가에 비례해 흉악범죄가 동반상승한 결과일 수도 있다. 또는 옛날에도 이런 범죄가 있었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다. 또는 부모살해가 워낙 충격적인 범죄이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인식이 사실 이상으로 확대되기 때문일 수 있다.
돈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부모살해로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돈 문제를 둘러싸고 부모 자식 사이가 나빠지고, 법적분쟁으로까지 가는 일이 잦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혹시 돈에 대한 욕심과 여기서 파생된 갈등은 개인의 생존본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돈을 둘러싸고 부모자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불편한 예를 몇 개 들어본다.
첫 번째는 어느 단편소설에 나온 장면이다. 2차 대전 중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젊은 아내는 6살 아들과 가난에 쪼들려 살았다. 엄마는 돈이 급할 때 아들의 돼지저금통에서 10센트, 25센트짜리 동전을 꺼내 빵과 우유를 사는데 썼다.
어느 날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 왜 내 돈을 꺼내 썼어요?”라고 묻자 무안한 엄마는 당황한 나머지 오히려 아들을 큰소리로 야단을 친다.
두 번째 예는 10여년 전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부유한 집안의 가장이 집안의 경제권을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필요할 때 자기에게 용돈을 얼마씩 준다는 구두약속과 함께 상당한 재산을 물려주었다. 처음 용돈을 받고 얼마 지난 후 다시 용돈이 필요해진 아버지가 아들에게 얼마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깜짝 놀라면서 “아니, 지난번 드린 돈 벌써 다 쓰셨어요?” 하며 놀란 표정과 함께 다분히 나무람조로 묻더란다.
일단 내 손을 떠난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얘기였다.
세 번째는 어머니날이 지난 며칠 후 어느 모임에서의 이야기이다. 신혼의 한 여성과 대화 중 어머니날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두 분이 좋아하시는 식당에 갔어요”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살림을 해보니까 기본생활비 외에 예의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아요. 일년에 친정 시댁 양쪽으로, 두 분 어머니날, 두 분 아버지날, 네 분 생신, 네 분 크리스마스까지 모두 12번의 선물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얼른 적절한 대꾸가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받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재빨리 덧붙였다. “부모님들을 위해 쓰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가계부를 플러스 숫자로 끝내려니까, 전에 무심했던 비용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네요.” 애교 섞인 설명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젊은이가 프린스턴 대학출신이라는 사실은 범행을 설명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돈을 벌고, 번 돈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교육은 학교에서보다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다만 평소 부자 사이에 대화가 있었으면 이런 비극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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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