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남의 미라클

2019-07-20 (토)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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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12일부터 22일까지 열흘간 북한의 흥남부두에서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해상 철수작전이 전개되었다. 흥남부두는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남으로 가려는 민간인 피난민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피난민들은 미국의 마지막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기위하여 필사적으로 밧줄사다리를 타고 배에 올랐다. 이 피난민 대열 속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인 36세의 레너드 라류(Leonard LaRue)는 배에 선적되어있던 무기와 탄약, 차량 등 군용 장비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대신 피난민들을 태웠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22일, 밤새도록 배에 오른 피난민 수는 무려 1만4,000여명에 달했다. 59명 정원으로 되어있는 선실은 물론 5개 층의 화물칸과 주갑판 위까지 배 안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사람들로 메워졌다. 배 안에는 이들에게 줄 양식은커녕 마실 물 차 없었으며 몇 개 안 되는 화장실은 오물로 넘쳐 곧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메러디스호는 이틀간을 항해한 끝에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피난민들로 포화상태에 이른 부산항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더 항해해서 도착한 곳이 거제도였다. 배에 타고 있던 1만4,000여 명의 승객들은 기적과 같이 모두 무사했으며 오히려 사흘간의 항해 중 다섯 명의 새 생명이 배 안에서 탄생하였다. 배 안에는 가위도 없었기 때문에 탯줄을 이빨로 끊어야했다.


레너드 선장은 후일 회고록에서 “작은 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도 배가 침몰하지 않고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크리스마스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기적이었으며 하느님의 손길이 직접 그 배의 조타륜을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흥남철수작전이 있은 지 4년 후인 1954년, 40세의 레너드 선장은 바다를 떠나 뉴저지 뉴튼타운의 성바오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된다. ‘마리너스 수사님’으로 불린 그는 그곳에서 2001년 10월14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47년간 조용히 수도생활을 했으며 수도원 안의 기념품 가게를 관리했다. 그가 관리하던 목조 단층 기념품 가게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

그의 유해는 수도원 내의 성직자 묘역에 묻혀있다. 다듬이 돌보다 조금 큰 납작한 묘비석만이 그가 묻혀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묘비석들과 나란히 놓여있는 그의 묘비에는 이름과 출생연도, 사망연도만 간단히 기록되어있을 뿐 그의 영웅적인 인류애에 관한 어떤 설명도 적혀있지 않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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