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2019-07-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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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back to your country : 멍청한 사람들이 어떤 인종은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쓰는 인종주의 용어”라고 속어사전 사이트 어반 딕셔너리는 풀이한다.

지난주 플로리다의 한 버거킹에서도 두 명의 백인 할머니들이 ‘고우 백’ 소동을 벌였다. 스패니시 대화를 하는 종업원들을 향해 “여긴 미국이야, 영어를 안 쓰려면 멕시코로 돌아가”라고 트집을 잡기 시작한 것. “난 멕시코인이 아닙니다. 손님은 편견이 너무 심하네요. 내 식당에서 나가주세요” “네 식당 아니잖아” “안녕히 가시고 다신 오지 마세요” 푸에르토리코 이민인 매니저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마무리 했지만 만약에 또 온다면 무단침입으로 고발하겠다면서 “요즘 시대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기 힘들다”고 분개했다.

요즘 미국엔 그런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전국 아시안퍼시픽아메리칸 변호사협회 신디 챙 회장은 연방의사당 계단에서, 중국계 2세 뉴욕타임스 기자는 맨해튼 한복판에서, 운전 중이던 한인남성은 캘리포니아 거리에서 느닷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너희나라로 돌아가라”는 봉변을 당했다.


영어가 불편하고 문화가 낯선 1세만이 아니다. 식당과 주유소, 지하철과 산책길,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운동장에서 이민 2세, 3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유색인종 미국인들이 이 가장 전형적인 인종차별 ‘불링’을 겪고 있다.

얼떨결에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무지하고 무례하며, 악의적이고 저급한, 멍청하고 정신 나간’ 개인은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다. 적절한 대응을 못했어도 무시하고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전형적 ‘인종주의 용어’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건 다른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민주당 진보파 여성 유색인종 연방 하원의원들을 향해 “너희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공격하는 일련의 트윗을 쏟아내면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급진 리버럴의 선두주자인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해 라시다 틀라입, 일한 오마르, 아이아나 프레슬리의 초선 4인방이 국경지원 예산문제 등을 놓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중도적인 지도부와 대립하는 민주당 내부 갈등에 트럼프가 끼어들어 초선의원들을 겨냥, “완전히 망가지고 범죄가 들끓는…원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인종적인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3명은 미국태생, 1명은 12세에 미국에 온 시민권자인 이들은 거침없는 반격에 나섰다. “내가 온 나라는 미국이다” “우린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우리까지 포함하는 미국을 상상할 수가 없어서 성난 것이다” “인종주의란 이런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최악이며,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에 맞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이유다”…

민주당은 내분을 잠시 멈추고 펠로시 의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들려는 트럼프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에 정복당한 공화당은 이번에도 조용~하다. 극좌 리버럴 정책이야 얼마든지 헐뜯을 수 있다. 그러나 동료의원들에 대한 정면 인종차별 조롱에도 ‘감히!’ 반응을 내놓지 못하는 그들이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남의 집안싸움에 끼어든 트럼프는 무슨 심사였을까. 민주당 내분에 부채질하려는 심리였다면 오히려 민주당 결속 계기가 되었으니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방화’ 역시 핵심지지층 결집 위한 재선 전략이라면…“비백인은 진짜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노골적 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그의 또 한 번의 4년을 미국은, 이민사회는 이번에도 용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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