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메이’ 스팸

2019-07-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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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스팸(SPAM)에 대한 추억 한두 가지는 갖고 있음직하다. 어려웠던 시절 호화 반찬이었고, 학창시절 캠핑 갈 때 반드시 챙겼던 캔 푸드이며, 부대찌개와 김밥, 김치볶음밥의 단골 재료로 쓰이는 것이 스팸이다. 미국산 햄 통조림이지만 그 짭조름하고 기름진 맛이 쌀밥과 기막히게 어울리면서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것이다.

세계 2위의 스팸 소비국 한국의 이처럼 유별난 스팸 사랑에 대해 2013년 BBC는 “왜 스팸은 한국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일까?”라는 기사에서 “스팸이 한국에서는 추석 최고 인기 선물”이라고 보도했고, LA타임스도 오래전 한국의 스팸 인기에 대해 특집기사를 쓴 적이 있다.

스팸을 만든 사람은 호멜(Hormel)사 설립자의 아들 제이 호멜이다.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가공육 전투식량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1926년 세계 최초의 통조림 햄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넓적다리 햄을 만들고 남는 어깨살 부산물과 지방이 잔뜩 붙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부위를 모두 갈아서 소금, 물, 감자전분과 보존제 및 결합제, 설탕,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해 만든 것이 스팸이었다.


1937년 처음 나온 스팸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미군의 군용식량으로 납품하면서 초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값싸고 휴대가 쉽고 썩지 않는 고열량 단백질 식량 스팸은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어디나 따라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전선 우방국의 지원물자에도 언제나 스팸이 들어있었는데 특히 식량부족이 심각하던 영국과 연합군의 일원이던 소련군에게 많은 양의 스팸이 지원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어 괌, 하와이, 오키나와, 필리핀 및 태평양의 섬들에도 퍼지게 되었으니 고기 구경도 못하던 전시에 스팸은 어디서나 환상의 음식이었다. 특히 한국은 제2차 대전 후에도 6.25 전쟁과 베트남 참전 등 미군이 가는 전장에서 언제나 스팸과 함께 했던 덕분인지 스팸 최강국이 되었다. 하와이 주 역시 스팸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이곳의 맥도널드에서는 밥에 스팸과 계란을 얹은 메뉴가 최고 인기여서 버거킹도 2007년부터 스팸 메뉴를 시작했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는 스팸이 그리 인기 있는 식품이 아니다. 질 낮은 음식이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안티 스팸’ 인식이 널리 퍼져있어서 중산층 이상 부모들은 자녀에게 스팸을 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미국사람 중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스팸을 못 먹어본 사람도 많고, 대학 기숙사에서 아시안 유학생들 때문에 처음 스팸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젊은 셰프들이 스팸을 사용한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타임지 최근호가 보도했다. 하와이 출신이나 아시아계 셰프들이 어렸을 적 맛있게 먹었던 스팸에 대한 추억을 새로운 메뉴에 조심스럽게 접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DC의 식당 ‘모모 야키토리’의 대만계 셰프 앤드류 치우는 한 고객의 요청으로 스팸 요리를 개발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더 다양한 레서피를 만들고 있다. 브루클린의 한식당 ‘인사’의 오너 셰프 김소희는 직접 만든 스팸을 부대찌개와 김치볶음밥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리호리호 요트 클럽’의 셰프인 하와이 출신 라비 카푸르 역시 직접 만든 스팸으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아시안 셰프들이 재해석한 ‘고메이 스팸’은 어느 나라 음식이라 해야 할까? 스팸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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