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빅원이 닥치더라도…

2019-07-12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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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휴가 중 남가주 지진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돌아오니 어디를 가나 4일과 5일 연속으로 덮친 강진이 화제였다. 갑자기 몸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섬뜩함, 진동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이게 빅원인가 싶은 공포감을 공통적으로 말했다. 무서움이 그만한 것은 그것이 지진인 줄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지진은 불가해한 사건이었다. 세상의 기반인 대지가 흔들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원인을 모르니 공포는 증폭되고, 그래서 개입한 것이 상상력이다. 세계 전역의 다양한 문화권에는 수천년 구전으로 내려온 지진 전설들이 있다. 현상을 이해함으로써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여러 전설들 중 특히 상상력이 돋보이는 것은 인도의 전설이다. 인도에서는 4마리의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코끼리들은 거대한 거북의 등을 밟고 서있고, 거북은 코브라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이들 중 어느 하나 움직이면 지구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구도이다. 고대 인도에서 지진이 잦았던 모양이다.


지진 다발 국가인 일본에서는 나마츠라는 거대한 메기가 원흉이다. 메기는 해저에 웅크리고 있고, 그 위에 일본 열도가 자리 잡고 있다. 장난질 좋아하는 메기를 붙잡아두는 것은 카시마 대명신. 메기를 거대한 돌을 짓눌러 꼼짝 못하게 만드는데 카시마 신이 방심하는 순간 메기가 몸을 뒤틀면서 일본 열도는 흔들린다. 지진이 나는 것이다.

신화나 전설 혹은 종교의 시각으로 보던 지진을 과학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1755년이었다. 11월 1일 당시 황금기를 구가하던 포르투갈 제국의 번화한 도시, 리스본에 대재앙이 덮쳤다. 3차례의 강진이 10분 간 계속되면서 사망자가 6만에 이르고, 수많은 건물이 붕괴되며, 곳곳의 불길이 일주일이나 타오르면서 도시가 초토화했다. 그리고는 뒤이어 쓰나미까지 덮쳤으니 리스본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11월 1일은 하필 가톨릭의 만성절.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을 맞아 시민들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참변을 당했다. 당장 대두된 것은 기독교의 죄와 벌 시각이었다. 이에 강력히 반발한 것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였다. 쾌락에 젖은 파리나 런던보다 리스본이 더 죄가 많다는 건가, 피해자들의 죽음이 죄의 대가라면 엄마 품에 죽은 어린아이들은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 그는 분개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로서 그는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해석을 촉구했다.

리스본 지진은 유럽 전역에 신학적 과학적 논쟁을 촉발하고 신의 섭리로만 여겨졌던 자연재해는 서구사상 처음으로 물리적 현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상적 변혁을 토대로 현대 지질/지진학이 탄생했다.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친다던 시대로부터 수천년, 규모 8.5였던 리스본 대지진으로부터 260여년, 우리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지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가.

지진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판 구조론이다. 지구의 최외각을 이루는 암석권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판으로 되어있어 판과 판이 스치면서 그 경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샌 안드레아스 지진대는 샌프란시스코가 위치한 동쪽의 북아메리카 판과 로스앤젤레스가 위치한 서쪽의 태평양판이 각기 남쪽과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지진 위험이 상존한다. 그에 더해 캘리포니아는 자잘한 지진 단층이 수십 개 얽혀있어 언제라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충 그 정도이다.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놀랍게 발전했고, 지진 연구 역시 집중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현실은 지진이 발생하는 날을 짚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진이 터질 경우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방도 대처도 불가하다. 언제일지 모를 그때에 대비해 비상식량이나 약품을 준비하는 것이 고작이다.


자연은 아름답고 경이롭지만 인간에게 반드시 우호적이지는 않다. 지진도 허리케인도 토네이도도 인간을 위해 방향을 바꾸거나 시간을 늦추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의 길을 가고,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받아들일 뿐이다.

이번 지진은 남가주에서 20년 만의 강진이다. 몇 년에 한 번씩 평균 규모 6의 지진이 터지는 지역에서 지난 20년 남가주는 예외적으로 잠잠했다. 규모 8 이상의 빅원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지진 전문가들은 빅원이 언제 어느 때라도, 당장 오늘이라도 닥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 도적 같이 찾아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 매일을 빅원이 닥치는 그 날로 여기며 살라고 조언한다. 지진대 위에서 사는 우리의 삶, 오늘 세상이 끝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살아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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