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일과 애국자

2019-07-1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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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 포위됐다. 임금의 생사조차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금성탕지(金城湯池)로 여겨지던 강도(江都-오늘날의 강화도). 불안감이 몰려오면서 그곳으로 피란 간 사대부 집 여인들의 대화도 ‘닥쳐 올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쏠렸다.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 한 지체 높은 댁 마님의 결기에 찬 소리에 대부분의 여인들은 당연하다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맞장구쳤다.

그런데 한 여인만 아무 말이 없었다. 여러 여인들의 추궁성 질문에 ‘그 때 가봐야 알겠다’고 했다. 그러자 질타가 쏟아졌다. 한 마디로 더러운 여자라고.


드디어 그 최악의 날이 닥쳤다. ‘차라리 자결을 하겠다’던 여인들 중 대다수는 정반대의 짓을 했다. ‘그때 가봐야 알겠다’던 여인은 오히려 자결을 해 정절을 지켰다. 병자호란의 참화와 관련해 전해진 한국 역사의 한 슬픈 에피소드다.

애국심은 어떻게 비유될 수 있을까. 일본의 한 작가는 팬티와 비교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팬티는 누구나 입는다. 그런데 팬티를 입었다고 떠들며 큰 소리로 자랑한다. 툭하면 애국심을 강조하고 나서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바로 그렇다는 빈정거림이 그 비유에 숨어 있는 것이다.

배일(排日)이니 반일(反日)이니 하는 말도 그렇지 않을까.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한국인치고 일본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혐일(嫌日)까지는 아니라도 과거 한국을 침략해 숱한 아픔을 준 일본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다. 이는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로 상식 중의 상식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면 당연히 팬티를 착용하는 것처럼.

그런데 배일, 반일 더 나가 혐일의 언어가 요즘 기승을 떨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특유의 현상이다. 뭐랄까. 항일정신을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긴다고 할까. 이와 함께 기묘한 등식이 생겨났다. ‘반일=애국’이란 등식이다.

그 분위기에서 반일을 말하지 않으면 매국노 취급을 당한다. 일본과의 문제에서 온건한 발언을 하면 대뜸 ‘토착왜구’란 비난을 해댄다. 그러면서 코드인사로 일관해왔다.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비분강개하는 항일지사(?)의 면모를 지닌 사람들로 채워지는.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를 가해왔다. 불의의 일격, 아니 예상돼왔던 반격이다. 증시가 출렁인다. 한국경제가 통째로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코드외교가 결국 불러올 것을 불러왔다고 할까.

그런데도 여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대일강경의 목소리뿐이다. ‘일본상품을 배격하자’, ‘의병이 일어설 때가 됐다’ 등등의 주장이 여권의 고위당국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장려되는 것은 일제잔재 청산 작업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향나무를 학교교정에서 뽑아내는 등.

여기서 문득 떠올려지는 것이 있다. ‘톰 소여’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애국자를 빗대 한말이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애국자’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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