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기업 영웅의 죽음

2019-07-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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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미국에 이민 온 한인이라면 당시 TV에 자주 등장하던 기업인 얼굴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이름의 이 인물은 자기 회사 광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리 아이오코카가 그 사람이다.

70년대 말 미 3대 자동차 화사의 하나인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개스 거즐러’라고 불리던 대형 자동차를 팔아먹고 살던 이 회사는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기름 값이 폭등하면서 미국인들이 값싸고 작으며 품질 좋은 일제차를 타기 시작하자 경영이 급속히 악화했다.

이 때 이 회사 경영 책임자로 발탁된 아이오코카는 연방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당시까지만도 미국에서는 기업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정부가 특정 기업의 생사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오코카는 특유의 신념과 화술로 워싱턴의 정치인들을 설득했다. 정부가 지급 보증만 해주면 긴급 융자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구조 조정과 경영 혁신을 통해 회사를 살릴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가 문을 닫은 후 대량 실업이 발생해 정부가 실업 수당을 주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연방 의회는 15억 달러의 구제 금융 지급 보증을 해주며 이를 발판으로 크라이슬러는 예정보다 7년 먼저 빚을 모두 갚고 기사회생에 성공한다. 이와 함께 아이오코카는 일약 기업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크라이슬러가 살아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미니밴이다. 당시 미국인들이 타는 자동차는 세단이나 트럭 등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세단은 연료 효율 등에 관한 각종 규제로 이익을 남기기 힘들었고 트럭은 물건을 나르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이 때 아이오코카가 낸 아이디어가 경 트럭 뒤에 화물을 싣는 대신 좌석을 달아 일반인들이 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트럭으로 분류돼 연료 효율에 대한 까다로운 규정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함께 태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미니밴의 시조 다지 캐러밴이다. 이 미니밴은 자녀를 기르는 가정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크라이슬러를 돈방석에 앉힌 효자 상품이 됐다. 또 미니밴은 수입 경 트럭에 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규정 덕에 일본산 제품과의 경쟁도 피할 수 있었다.

아이오코카가 이런 차 생산에 착안한 것은 자동차에 관한 그의 오랜 경험 덕임은 물론이다. 이탈리아 이민자를 부모로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장학금을 받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포드 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판매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 그는 포드 입사 24년만에 사장 자리에 오르는 입지전적 인물이 되지만 사주인 포드 일가와 불화 때문에 좋은 실적을 내고도 1978년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때 마침 구세주를 찾고 있던 크라이슬러가 그를 모셔 가며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그가 이렇게 살린 크라이슬러는 2008년 금융 위기에 휩쓸리며 파산 신청을 한 후 정부의 도움으로 다시 겨우 회생해 지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아이오코카가 지난 2일 LA에서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전성기 때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인들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한 시대가 갔음을 새삼 느낄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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