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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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의자에 몸 담고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 솔솔

2019-07-05 (금) 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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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게 돌아다닌다고 제대로 구경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을 때가 있다. 앉아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과 바로 길 건너편에 위치한 올베라 스트릿이 딱 그렇다.

유니언 스테이션

남가주에 수십 년을 살아도 유니언 스테이션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 공항에 갈 일은 많아도 역에 가볼 경우는 좀처럼 생기지 않으니 구태여 찾기 전에는 올 일이 없다.


미국 두 번째 대도시인 LA의 중앙역인 유니언 스테이션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를 향해 간다. 또 다른 무리는 기차에서 내린다.

주말은 한적해 진 유니언 스테이션을 음미하기 적당한 시간이다. 역안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여유가 넘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앰트랙(Amtrak)과 메트로(Metro)를 타고 중가주까지 해안선을 누빌 수도 있으며 샌디에고 비치에 닿을 수도 있다. 교통체증에 시달리지 않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으니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합실에는 큼지막한 1인용 가죽의자가 즐비하게 마련돼 있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담고 커피를 마시다보면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몰려온다. 어느새 근육도 풀리고 뭉쳤던 신경도 여기저기서 무장해제된다. 옛적 고향에서 기차여행을 떠나던 추억도 떠오르고, ‘사는 게 뭔가’ 인생의 의미도 새삼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유니언 스테이션은 그냥 역이 아니다. 대리석이 깔리고 꼼꼼하게 치장된 예술품 건물이다.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묘미를 알 수 없다. 설계를 맡은존 파킨슨과 도널도 B. 파킨슨은 LA시청을 비롯해 여러 기념비적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여기에 네덜란드 건축회사가 합세해 유럽풍 분위기 물씬풍기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겉모습은 남가주에서 흔히 접하는 스패니시 스타일이다. 색조 역시 흰색으로 단순하다. 하지만 겉과는 전혀 다르게 내부에 들어서면 화려한 색상에 화려한 인테리어가 방문객을 반긴다. 특히 뻥 뚫린 천장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바닥에는 테라코타 타일로 섬세하게 모양을 냈다.

유니언 스테이션은 지난 1939년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센트럴 스테이션과 그랜드 스테이션 둘로 나눠져 있었지만 이 때 통합됐다. 1980년 국가 사적지로 등록됐다.

기차역에서 밥을 먹고 싶다면 하비하우스 레스토랑을 가면 된다. 심심치 않게 영화촬영 장소로 등장하는 곳이다. 한인타운 뿐 아니라 오렌지카운티, 밸리에서도 기차와 전철로 연결돼 있으니 자동차를 몰지 않고 와도 된다. 주말에는 10달러짜리 메트로 티켓을 사면 온 종일 모든 구간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올베라 스트릿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올베라 스트릿이다. 차이나타운 옆에 있는 올베라 스트릿은 흔히 ‘로스앤젤레스가 시작된 곳’이라고 알려진 멕시칸 시장이다. 다운타운의 알라메다 길을 따라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로 길게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 안에는 가게, 노점상, 카페, 레스토랑, 선물점 등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지난 1930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데 놀라운 점은 현재 이곳에서 영업하는 상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선대의 유업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올베라 스트릿의 산 증인들이다.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한인에게도 올베라 스트릿은 때때로 찾아가 걸어보고 싶은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 오른쪽 길로 먼저 들어서면 타코, 타퀴토스 등을 파는 노점 카페가 모여 있다.

이른 아침이면 히스패닉 아저씨들이 이곳에서 아침 배를 채우고 일터로 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원래 해장국이든 국밥이든 아침에 손님이 몰리는 가게가 진짜 아니던가. 손에는 타코를 들고 올베라 스트릿 곳곳을 돌아다니는 마리아치가 연주하는 라틴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올베라 스트릿에는 특히 가죽 공예제품이 많다. 지갑, 벨트, 핸드백, 가방 등등 ‘가죽으로 이렇게 많이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또 하나는 멕시칸 문화와 종교를 한 눈에 보여주는 조형물과 미술품 등이 눈길을 끈다. ‘이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사는 구나’ 하며 이웃의 심정을 읽게 된다.

스트릿의 반대편 골목에는 멋진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다. 길가 발코니에 자리를 잡아도 되고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 레스토랑은 예상 밖으로 안쪽으로 길게 들어간다. 끝 벽에 난 창문으로 시장 밖 길이 보인다.

시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고즈넉한 기분이 감돈다. 같은멕시칸 요리를 먹는데도 도란도란 기분이 다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 오리지널 멕시칸 맛, 갑작스러운 조용함 등이 어우러져 현실의 피곤을 잠시 잊는 휴식을 느낀다.

올베라 스트릿에는 가게와 식당만 있는 게 아니다. 박물관도 7개나 자리 잡고 있다. LA에서 가장 오래된 집도 있다. 당시 주거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데 부엌 화덕과 가구 등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시장 문도 일찍 연다. 평일에도 오전 8시면 몇몇 카페들이 아침식사를 팔기 시작한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와 11시에는 50분 동안 봉사단체가 시장 투어 안내를 제공한다.

<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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