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인 메이커’ 되기

2019-07-04 (목)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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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레인 메이커’ 되기

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지내는 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오늘이 아들의 43세 생일이고 천국 나이 5년째입니다. 5번째 장학기금 10만 달러를 금요일에 보냈습니다. 작정한 50만 달러를 주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아들의 모교에 올해 3명이 장학금을 받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식 잃은 뼈아픔의 고통을 어려운 이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하나님....무슨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천국의 소망과 감사함으로 남은 여정을 가게 하실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아, 이분은 하늘이 무너지는 참척의 고통을 나눔의 삶으로, 섬김의 삶으로 이겨내셨구나 하고 무척 놀랐다. P씨는 한인사회의 소문난 부자가 아니다. 오로지 부동산업계의 존경받는 커리어 우먼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번 수입을 과감히 뚝 떼어 기부하고 있었다. 코넬대학에서도 개인으로서 가장 큰 금액 기부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걸인을 보면 “주님, 저 잘되면 불쌍한 사람 돕겠습니다” 결심했다는 P씨는 기부를 하고난 빈자리를 하나님은 바로 채워주셨다고 했다. 이 장학금 외에도 200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11명의 불우아동 후원과 우크라이나 선교사 후원에 2만장의 달력 사역을 한 것도 알게 되었다.


또 한 분, 워싱턴 DC에 사는 친척 오빠가 돌아가신 후 올케 L씨는 평생 해온 기부생활이 힘에 부쳐서 이제 그만 하려니 했다. 작년 봄, 의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고인의 1주기 추모기념 시낭송회가 있다고 하여 워싱턴으로 갔었다. 유니언 기차역에서 나를 픽업하여 행사장 입구에 내려주자마자 L씨는 결식아동을 돕는 재단의 바자회 준비를 하던 중이라면서 바로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그날 고인의 시는 내가 낭독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포토맥 집에서 L씨는 “몽고 울란바토르 선교사님 사역은 네 아이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후원하고 있다. 매년 한국 수녀원 고아들에게 보내는 기금이 없어서 어떡하나 하던 차에 본가에서 쌀농사가 잘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걸 그대로 수녀원으로 가져다주라고 했다. 이렇게 하느님이 잊지 않고 해결해주신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L씨가 멋진 옷을 사 입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좀 편하게 살기 바란다. 하지만 그 앞에 서면 아무 말도 못하고 만다. 그리고 이 분들은 기자의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저 한인사회에 기부문화가 정착되는 긍정적 변화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기부자들은 일반적으로 ‘레인 메이커(Rain Maker)‘라 불리는데 이 말은 기도를 통해 가뭄에 단비를 내리는 제사장을 일컫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비를 만드는 사람 레인 메이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오늘날 뛰어난 영업사원, 우수한 능력의 창업자, 기업을 도와주는 자본투자가 등도 레인 메이커라 불린다.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중퇴해야 하거나 하루 한 끼 겨우 먹어야 하는데 P씨나 L씨처럼 장학금을 준다면 그야말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을 것이다.

기부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은 미국은 전체 기부자 중 일반인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라 한다. 타운의 공연장 수리비, 공원 청소비, 초등학교 운동시설 등에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사람은 레인 메이커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레인 메이커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기부와 자선, 그리고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시간과 노력만 쏟을 수 있다면 누구나 ‘레인 메이커’가 될 수 있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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