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백년 된 빙산 깨지는 ‘흰 천둥’…인생무상 느껴

2019-06-28 (금)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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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④

수백년 된 빙산 깨지는 ‘흰 천둥’…인생무상 느껴

지구의 제일 남쪽 Cape Horn 섬에 있는 성당. 지금까지 본 성당 중에서 제일 작았다. 이곳에 올 수 있는 건강과 마음을 갖게 해준 은혜에 우리 부부는 감사 드렸다.

수백년 된 빙산 깨지는 ‘흰 천둥’…인생무상 느껴

빙하 밑에서 쏟아지는 폭포. 태산 같은 빙하 밑에서 녹아내리는 저 폭포수는 어쩌면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내린 눈이 이제야 녹아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 일 것이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내린 눈이 이제야 녹는 빙하 시대 지역이다.



깊은 얼음 속 강렬한 빛내는 광선 사파이어 보석같아
남극서 가장 가까운 Cape Horn 등대지기 일가족만 살아
장난감 같은 성당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
얼음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순수

2018년 12월21일
오전에는 Tierra del fuego 지역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오후엔 Pia 빙하 탐사를 갔다. 고무보트를 타고 빙하 옆을 따라 등산하는 곳인데 한 시간 쯤 빙하를 따라 올라갔다. High Difficult를 지원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인데 물론 나도 신청했다. 여기 와서 보니, 캐나다 록키 마운틴이나 몬태나 주의 빙하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천둥소리를 내며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데 너무 순간적이라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빙하 속 어디서 계속 얼음이 깨지는 천둥소리가 난다. 최소한 수백년이 넘은 거대한 빙하들이 쪼개지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주 높은 산 꼭대기에 쌓인 빙하 산의 표면은 하얀 눈덩어리, 얼음 덩어리는 하얀 색이 아니다. 그 깊은 얼음 속에서 강렬한 빛을 내는 광선은 얼음 색깔을 빛나는 사파이어 보석처럼 보이게 한다. 한국의 옥색 비녀, 옥반지가 빛을 뿜어내는 듯하다. 색이 빛을 내고 있다면, 그것도 얼음같이 투명한 얼음이 옥색 광선의 빛을 뿜어내는 듯하다. 어쩌면 저 얼음 속에 긴 시간 동안 받아온 태양의 강한 빛을 뿜고 있다가 다시 토해 낸다면 저렇게 얼음이 빛을 품어 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 영롱하고, 신비롭다. 그냥 얼음 덩어리가 아니고 높이는 맨하탄에 빌딩만 하고, 폭이 2km, 길이가 24km나 되는 코발트빛을 뿜는 얼음 빙하가 빛을 발하는 걸 본다는 건 꿈도 못 꾸던 광경이다.

파타고니아 크루즈 배는 애들 데리고 가족끼리 마이애미, 알래스카, 지중해로 휴양을 떠나는 그런 배가 아니고, 빙하와 무인도에 내려서 생태계 탐험 배 같은 성격을 띈 배다. 배에 있는 시간에는 매일 1~2번의 세미나가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자연 환경, 마젤란이 항해했던 해협에 대한 설명,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 변화, 빙하가 녹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과 다큐멘터리 상영, 강의와 영화들이 자연 환경에 대한 또 다른 경각심을 갖게 했다. 이틀 밤만 지났는데도 내가 지구 자연 보호론자가 된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제 본 펭귄들이 사는 섬에서 본 펭귄들의 생태계 현상들과 자연의 순환 구조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이 아까운 지구를 이렇게 남용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식탁에서 프랑스, 영국 부부와 두 아들, 프랑스 부부의 애교스럽고, 코믹한 대화로 우리 식탁만이 제일 늦게 까지 자리에 앉아서 웃고 떠드는 식탁이 되어 버렸다. 매번 식사 때마다 수다를 떠들다 보니 여행하는 즐거움도 더 했다. 프랑스인 아들 크리스와 알렉스는 성격이 대조적인지라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고, 큰 아들은 은연중에 자기 아빠와 경쟁의식을 갖고 부자지간에 서로 잘난 척 하는 걸 보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아빠인 에릭이 나에게 그랬다. 자기는 큰 아들에게서 경쟁자 같은 느낌을 갖고 대화를 한다고. 직장 다니는 내 아들도 내가 하는 걸 보면서 아빠는 왜 겨우 그것밖에 못 하냐고 나에 대해서 약간은 답답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에릭도 아들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걸 보니, 어느 민족이고, 큰 아들과 아빠는 약간은 서로 잘난 척 하면서 공존 하지 않나 싶다.

빙하가 녹는다
어느 섬 사이를 지나고 있고, 좁은 해협을 지날 때면 배의 흔들림이나 상황을 수시로 방송으로 알려 주고, 빙하 지역을 지나게 되면 밖을 내다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저 빙하들이 다 녹는다면 어떻게 될까. 10년 전, 20년 전 빙하의 사진을 현재 빙하의 사진과 비교 해 봤을 때 보통 문제가 아니다. 빙하가 녹는다는 건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이다는 걸 어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 인류들이 대책 없이 쓰고 있는 화석 연료 때문에 변하는 우리 후세들이 겪을 재난은 실제로 이런 곳에 와서 보고 듣지 않으면 실감이 안 난다.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땅
저녁 식사 전에 설명한 내일 상륙하게 될 Cape Horn이란 섬은 남극에서 제일 가까운 땅이란다.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The End of World 라고 불리는 이 섬에는 등대가 있다. 이 섬 근처에선 지난 500년동안 800척의 목선과 만 명 이상이 거친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험한 바다라서 파도가 심해지기 전인 아침 6시에 그 섬에 상륙해야 된다고 한다. 섬에 작은 보트로 상륙이 될지 안 될지 그곳에 가까이 가서 파도를 봐야 한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 그곳에 상륙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로 봤는데 꼭 태풍 부는 날 특수 부대가 적진 해안에 침투 하듯이 살벌 하다. 지구 대륙의 제일 남쪽 땅끝을 밟을 수 있도록 파도가 잔잔 했음 좋겠다. 배는 크기에 비하면 별로 흔들리지 않지만, 파도가 심한 지역을 잠자는 시간에 맞춰 항해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배 엔진 소리도 그리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고, 조금씩 좌우로 흔들리니까 더 안정감이 있어서 편안했다. 남극이 가까워서 그런지, 밤 11시에도 어둑어둑 할 뿐 바다와 육지들의 시야가 뚜렷이 보인다.

보통 아침 8시가 식사 시간인데, 6시에 기상해서 모두들 Cape Horn이란 섬에 상륙했다. 보트를 타고 섬에 접근하는데 파도가 세니 잠수복을 입은 승무원 두 명이 해안가 물속에 들어가서 해안에 접근하는 보트를 움직이지 않게 붙잡고, 다른 4명은 보트를 지지대에 묶어서 우리들을 상륙 시킨다. 아슬아슬하게 해안에 내려서서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칠레 정부가 운영하는 등대, 대륙과 워낙 거리가 멀어서 일년 단위로 가족이 와서 등대를 관리 한다고 한다. 착하게 생긴 등대 장은 같은 제복을 입은 부인과 함께 우리 일행을 환영 하는데, 매년 이 때 우리가 탄 배 말고는 이 섬에 오는 배가 없어 가족만이 이 섬에서 보낸다고 한다. 물론 직업이지만 일 년간 절해 고도, 이런 섬에 갇혀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일 년에 한 두 달 만이라도 세상과 동떨어진 이런 곳에 살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과 아무런 연결 되지 않는 상태로 인간은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지역이 그래서 그런지 바람이 무척 세다. 등대와 등대지기 숙소는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등대장 부부는 4개월짜리 애기와 두 살, 네 살 꼬마, 다섯 식구가 이 섬에 산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구의 어느 무인도에서 일 년간 사는 셈이다. 선하게 생긴 등대지기 부부의 모습이 이 섬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곳엔 아주 작은 성당이 있었다. 어린 소녀가 갖고 있는 조그만 장난감 같은 집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예쁜 성당, 서너 명이 들어가 앉으면 성당이 꽉 차는 느낌의 성스러운 성당. 잠깐 앉아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인간의 위대함
등대 방문을 끝내고 돌아와 “WULAIA BAG’이란 영화를 봤다. 남극 탐험하는 중에 바다가 결빙되는 바람에 배가 얼음에 갇히고, 목선이 쪼개지는 바람에 모두들 얼음 위로 내려와 텐트를 치고 살면서 3명이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서 배를 떠난다. 그 혹한 속에서 800마일의 거리를 걸어서 일 년 후에 구조대를 끌고 와 살아있는 동료를 구하는 실화 다큐멘터리.

본선인 큰 배가 파손 되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서 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얼음이 떠다니는 바다를 한 달 간 노를 저어 대륙에 도착해서 빙하를 통과해서 구조 팀과 일 년 만에 돌아와 동료들을 구하는 처절한 인간 승리의 다큐멘터리. 일 년을 남극에서 펭귄과 물개를 잡아먹으며 부서진 목선배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영화를 그 현장에서 보면서 인간의 위대함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후엔 Wulaia Bay 답사가 있었다. 승객들의 체력에 따라 3그룹으로 나뉜다. 섬에 내려서 걷는 것만 하는 게 아니다. 선생님이 학생들 데리고 자연 학습하는 분위기. 오늘도 섬 정상에 올라 명상 시간을 가졌다. 승무원의 제안에 따라 조용히 앉아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과 일치하는 마음으로 깊은 숨을 쉬었다. 지구 끝,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 산꼭대기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깐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과 시간을 갖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에도 산에 오르기로 되어 있어 전부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에 모였다. 파도가 무척 세다. 큰 배인데도 무척 흔들린다. 작은 보트를 타고 상륙하다는 것은 무척 위험 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송으로 선장이 다시 일단 선내로 들어가 있으라고 한다. 오늘은 Challenger Program으로 어느 무인도에 올라가는 계획이 있었는데, 라운지에서 모두 커피를 마시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렸는데도 파도는 더 커지고, 비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때린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내려있던 닻이 올라오면서 선장의 안내 방송은 안전 여행을 위해 오늘 일정을 취소한다고 한다. 승객들이 한번 배에서 타고 내릴 때마다 수많은 승무원들이 긴장을 한다. 바다 상황 탐색조로 나갔던 4대의 고무보트에 탄 승무원들이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배로 돌아오는 게 보인다. 승무원들이 먼저 섬 해안가에 가서 상황을 확인 한 후에 선장에게 보고 하면, 상황에 따라 선장이 취소를 한다는 것이다. <계속>

<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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