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마운틴 볼디에도 기죽지 않는 ‘꼬맹이 험산’

2019-06-28 (금) 정진옥
크게 작게

▶ Rattlesnake Peak (5,826’)

마운틴 볼디에도 기죽지 않는 ‘꼬맹이 험산’

등산로에 드리운 구름.

마운틴 볼디에도 기죽지 않는 ‘꼬맹이 험산’

정상에서 바라본 Iron Mountain & Mt. Baldy.


마운틴 볼디에도 기죽지 않는 ‘꼬맹이 험산’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는 등산인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잘 어울릴 만한 산이다. 8,000’ 이상의 고봉이 20개 이상 즐비한 San Gabriel 산맥에서 6,000’가 채 안되는 이 산은, 높이로는 가히 꼬맹이 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산악인들이 이 꼬맹이 산을 San Gabriel 산맥의 등산루트 가운데 10대 난코스의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대 난코스로 꼽는 산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Iron Mountain을 오르다 보면 서쪽으로 4~5마일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한참 낮지만 그래도 꽤 험준한 형상의 낮은 산이 하나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Rattlesnake Peak이다. 혹자는 이를 Little Iron Mountai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미상불 그럴듯한 별명이겠다.


오늘은 이 Rattlesnake Peak을 찾아 가기로 한다. 적설이 없는 낮은 고도이면서 순등반고도는 4,100’에 왕복 9마일의 산행이 되어, 해발고도가 10,064’에 이르는 Mt. Baldy를 Manker Flat에서 오를 때의 순등반고도 3,940’에 왕복 9마일의 산행에 비교할 만한, 만만치 않은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물론 Mt. Baldy는 해발고도 자체가 워낙 높기에 실제 등산을 하면서 느끼는 체감상의 난이도는 더욱 힘든 면이 있을 것이다. 경사각이 크고 그늘이 거의 없는 코스라서 등산이 익숙치 않은 분은 무리가 될 수 있겠다. 또한 기온이 높은 날에는 산행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

트레킹폴을 지니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될 터이고, 중간에 식수를 구할 수가 없으니 미리 여유가 있을 만큼의 충분한 물을 지녀야 한다. 산행에는 보통 7~8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길

I-210의 Azusa Ave Exit(SR-39)에서 나와 북쪽으로 약 12마일을 간다. 오른쪽으로 다리가 있으며 East Fork Road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3.3마일을 가면 길이 좌우로 갈라진다. 좌측의 Shoemaker Canyon Road로 1.9마일을 가면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고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한다. LA한인타운에서는 약 45마일의 거리가 된다.

등산코스

주차장의 동쪽은 East Fork의 제법 많은 물의 흐름이 있는 계곡이 되는데, 고도차가 커서 아래로 절벽같은 형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차량통제 게이트(2,300’; Mile-marker 1.89)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되는 넓은 길인 Shoemaker Canyon Road를 따라 올라간다. 10분 정도를 가면 길을 내기 위해 산줄기의 중간을 잘라낸 지점이 나온다. 또 5분쯤을 더 가면 이러한 잘라낸 단층이 또 나온다. 요즘 같으면 자연환경 보호차원에서 산자락을 이렇게 무참하게 일도양단하는 일은 하지않을 것이다. 매우 삭막한 모습이다.


사실 이 Shoemaker Canyon Road는 미국과 소련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1950년대의 냉전의 유물이라고 한다. 흔히 알려지기로는, LA지역이 원자폭탄의 공격을 받게 될 경우에 주민들이 효과적으로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외곽으로 빠지는 루트가 더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죄수인력을 투입하여 건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원폭 이외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필요성들이 고려됐을 터인데, 사실 이보다 앞선 1930년대에 이미 여러가지 실용적 이유에서, LA 와 Mountain High 스키장이 있는 숲속의 도시인 Wrightwood를 잇는 도로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이곳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East Fork를 따라 도로와 교량의 건설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38년의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하여 East Fork의 거친 물길에 도로가 유실되어지고 산사태도 나곤 하여 급기야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는데, 그때 건설되어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는 교량이 ‘The Narrows’에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콘크리트 교량 ‘Bridge to Nowhere’이다.

핵전쟁 발발을 전제로 1955년부터 피난도로를 건설할 때, East Fork 강변 뚝을 따라 건설한 도로들이 홍수에 유실되어졌던 과거의 사례를 감안하여, 이번에는 반대편인 서쪽의 산록을 깎아가며 East Fork의 물길보다 훨씬 높은 고도로, 여기서부터 Vincent Gap까지 도로를 놓아 Angeles Crest Highway에 연결되도록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Shoemaker Road도 끝내 완성을 못하고 주차장에서부터 북쪽으로 2.5마일이 되는 지점에서 중단된다. 험준한 지형이라서 공사가 너무 어렵고, 원폭에 대비한 피난도로의 필요성 자체에도 의문이 생긴 소이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는 도로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Road to Nowhere’라는 별명이 붙은 Shoemaker Canyon Road이다.

이 Shoemaker Canyon Road의 건설이 난항을 거듭하게 되자, Azusa에서부터 올라오는 Highway SR-39를 확충 연장하게 되는데, Crystal Lake를 경유하여 원래의 연결 목표지점이었던 Vincent Gap에서 서쪽으로 8마일 거리에 있는 Islip Saddle로 연결한 것이 1961년이었다. 그러나 이 도로도 잦은 산사태나 낙석 등으로, Crystal Lake에서 Islip Saddle까지의 6.2마일 구간은 1978년 이래 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 도로의 거리단축효과가 크다보니 언젠가는 제대로 된 길이 마련되어 요긴하게 활용되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다. 하긴 이러한 도로의 건설이, 아름다운 계곡과 강 등의 자연을 크게 훼손한다는 관점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겠다.

다시 20분쯤을 나아가면 3번째의 잘려진 줄기의 단층이 앞에 보인다. 이 단층을 50m 쯤 앞에 둔 지점에 길 왼쪽으로 Mile-marker 3.39라는 표지가 꽂혀있다. 주차장에서 1.5마일을 온 지점이다. 이곳에서 서쪽의 산기슭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일단 기슭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난 길이 보인다. 이를 따라가면 곧 북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움푹 패인 침식지역을 오른쪽 아래에 두고 이를 건너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뻗어있는 산줄기를 타고 오르게 된다.

대략 10여분이면 3,500’고도의 능선위에 올라서게 된다. 비로소 Rattlesnake Peak으로 올라가는 산줄기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자리에서 왼쪽인 서쪽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줄기가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면서 오른쪽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줄기의 능선을 일일이 다 거치며 산행을 하게 된다. 대충 살펴봐도 10개 정도의 돌출봉들을 지나야 북동쪽에 솟아있는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멀게 보이지만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이니, 용기를 내자.

먼저 맨 처음에 보이는 반마일 거리의 주능선의 봉우리(4,040’)를 향한다. 뒤를 돌아보면, 가까이로는 Iron Mountain이 우뚝하고 그 뒤로 Mt. Baldy가 신령스럽다. 사람의 흔적이나 도시의 모습은 아예없고, 자연 그 자체의 원시적 산봉우리들이 암암하고도 외외하다.

걸어오르는 등산로 주변은 몇 년전에 있었던 산불의 흔적이 역력하다. 타다 남아 검게 숯이 된 줄기들과 뿌리들이 쓸쓸하고 삭막한데, 그 사이 사이로 새롭게 자라 올라온 어린 식물들의 푸르름이 싱그럽고도 찬란하다.

대략 20분이면 4,040’봉에 올라선다. 왼쪽에서 올라오는 또 하나의 큰 산줄기가 이곳에서 합류된다. 합류된 산줄기의 흐름이 북동쪽으로 완만한 원을 그리며 휘어진다. 등산길은 주로 능선의 중심고점을 따라 오르고 내린다. 인위적으로 깎아내어 만든 등산로가 아니고 산을 찾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림으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된 ‘Use trail’이다.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고 나면 저만큼 앞으로 피라밋처럼 유난히 뾰쪽하게 솟아오른 돌출부가 나타난다. 이 능선상에서 주봉 다음으로 높은 봉이다. 등산인들이 ‘Baby Rattler’라고 부른다. 등산로가 거칠고 험악한 봉우리의 정점을 통과하여 조심스럽긴 하지만, 위태롭진 않다. 좁은 정점이지만 주위를 살피며 전망을 즐길만 하다.

다시 그 아래의 Saddle(안부)로 내려갔다가 그 다음 봉우리로 올라가는 일을 몇번 더 되풀이 한다. 길이 갈라지지 않고 외줄로 이어진다. ‘Baby Rattler’를 지나서 대략 1시간 내외를 걷다보면, 드디어 주봉인 Rattlesnake Peak(5,826’)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으나 사방의 전망은 대단하다. 동쪽으로 역시 Iron Mountain이 우뚝하고 그 뒤로 바짝 Mt. Baldy가 붙어있다. Baden Powell이 멀지않고 Mt. South Hawkins는 지척이다. East Fork의 깊은 계곡이 아득하다. 지나온 산줄기의 뻗어내림도 아스라하다.

정상의 바위에 박혀있는 Benchmark에 이곳 Peak의 이름이 ‘Fang’이라고 새겨져 있다. ‘뱀의 독니’라는 뜻을 가진 말이고 보니, 우리가 거쳐 올라온 3마일 길이의 전체 산줄기를 한마리 길다란 뱀의 몸체로 보고 이 주봉에 붙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우리 동양의 풍수에서 산줄기를 용으로 보는 것과 흡사한 인식이겠다. 이 주봉을 ‘독니’로 비유한다면,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싱싱한 Chaparral Yucca의 창날처럼 뾰쪽하고 예리한 잎들은 그 ‘독’에 해당되는 셈인가? 하긴 제대로 찔리면 출혈과 동통이 있고 크게 부어 오르기도 하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토착 원주민들의 옛 풍속에는 무당(Shaman)의 집전하에 의도적인 방울뱀 밟기 행사가 있었다 한다. 방울뱀들이 들어있는 구멍에 발을 집어 넣거나 아니면 구멍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그 해에는 뱀들이 갑자기 달려들지 않고 사전에 경계음을 낸다는 믿음에서, 거의 전 부족인들에게 행해진 의식이었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