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치슨라인’의 망령이…

2019-06-2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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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승리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100여 건에 이르는 테러음모를 사전에 적발, 차단했다. 알 카에다 조직파괴에도 크게 도움을 주어 4,000여명에 이르던 요원 80% 정도를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누가. 세계를 손바닥처럼 감시하는 비밀정보망 ‘에셜론(Echelon)‘이. 이 비밀정보망은 다섯 나라가 공동운영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5개의 눈(Five Eyes)’으로 불린다.

이 비밀정보망의 존재는 2010년 중반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실체가 노출되기 시작한 건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계약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의 NSA와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프리즘(PRISM)이란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 개인정보를 무차별로 수집, 사찰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다.


이와 함께 새삼 확인된 것은 미국의 수많은 동맹국 중에서 운명공동체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혈맹은 바로 이 네 나라란 사실이다. 영어 사용국가에 같은 앵글로색슨계인.

‘동맹의 시작은 정보공유에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 다섯 혈맹은 2차 대전 이후 냉전, 테러와의 전쟁 등을 겪으면서 ‘에셜론’을 공동운영해오며 혈맹으로서 유대를 다져온 것이다.

“5개의 눈(Five Eyes)으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7개의 눈(Seven Eyes)으로 늘릴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워싱턴 일각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의 동태도 심상치 않다. 북한 핵 위협에, 이란은 중동지역의 안보를 해치고 있다. 거기다가 오늘날의 클릭 하나 차이로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 사이버전쟁 위협이 그만큼 큰 것이다.

미국이, 더 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맞이한 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정보공유의 틀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진단과 함께 5개의 눈을 최소 7개로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후보 1순위 국가는 이스라엘과 일본이다. 항상 실존적 위협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은 정보공유에 목말라 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구 모사드는 이미 레전드(legend)급으로, 아랍-중동지역 정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거기다가 이스라엘은 사이버 전력도 막강하다.

일본은 동북아지역의 정보강국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가 모두 일본의 잠재적 적국이다. 이 같은 안보환경에서 일본은 동맹에 대한 사려가 깊다는 것이 워싱턴의 평가다. 그런데다가 일본의 정보능력은 세계 톱 수준이다.


무슨 말인가. 미국의 동북아시아의 주요 동맹국. 그 수준을 넘어 미국과의 공동운명체, 다시 말해 혈맹으로 워싱턴은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미일동맹은 날로 강화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은 미국의 ‘특급동맹’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러면. ‘미국의 베스트 동맹국 10’에 항상 끼어왔다. 냉전시대에는 동북아 전선의 최전방 역할을 맡아왔다. 중국이 새로운 패권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견제 교두보로서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다.

그러나 한국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은 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이 어디인지 워싱턴은 분노와 의심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한미동맹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동맹보다는 민족이 우선’이라는 입장과 함께 북한문제에 홀로 과속을 내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머릿속은 온통 김정은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공조에서 번번이 딴 짓을 하고 있다.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반일감정 확산, 북한에 대한 무조건식 지원, 그러면서 워싱턴의 인도-태평양 전략참여 요청은 거부하는 행보를 보여 온 것. 거기다가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중단 요청에 대한 태도도 그렇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화웨이는 5G 통신기술 전쟁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전쟁터가 화웨이인 셈이다.

문재인 청와대는 화웨이 문제에 대해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방관적 태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화웨이 장비사용이 한미군사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식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자 나온 워싱턴의 반응은 군사, 안보 정보제공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뭐랄까. 중증의 자폐성 행보라고 할까. 꿈에도 북만 바라보이는 몽유병자의 모습이라고 할까. 정보시대다. 더구나 미국과의 정보공유 없이는 북한문제에 완전히 ‘깜깜이 신세’가 한국의 현 주소다. 그런데도 화웨이 장비 사용중단 요청에 ‘노우’라는 아주 용감한(?) 결정을 내렸으니.

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니다. 특급대우, 운명공동체 동맹이 아닌 이상 1급 동맹국도 국가 이해에 따라 ’전략적으로 과감히 버려질(strategically expendable)‘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 대해 바로 이 수사- ‘strategically expendable’-가 요즘 들어 자주 쓰여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70여 년 전 소련봉쇄전략 입안자로 유명한 조지 케난은 한국을 ‘전략적 부담’으로 간주하면서 한반도는 ‘strategically expendable’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케난의 이 같은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애치슨라인이다. 미국의 아시아지역방위선을 일본열도에서 오키나와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선으로 그으면서 한반도를 배제시킨 것. 그 애치슨라인이 발표된 지 6개월이 못돼 6.25가 발발했다. 김일성이 남침을 한 것이다.

워싱턴은 정말로 제2의 애치슨라인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6.25 69주년을 앞두고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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