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무지에서의 걸음마

2019-06-24 (월)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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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의 걸음마

한영국 소설가

올해 7월20일은 아풀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함께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올해 CNN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 날의 감정이 새삼 되살아나 눈물까지 난다. 그때는 과학의 위대한 쾌거로 알았는데, 다시 되짚어 보니 과학만이 아니라 도리어 기적적인 사건으로까지 보인다.

세 우주비행사의 긴장된 얼굴, 불완전해 보이는 우주선 표면의 자국들, 출발 전에 일어난 수소연료의 누출, 일직선으로 그어진, 생명의 기운이 전무한 황무지…… 거기 무엇 하나 남아 나지 않고 모두 먼지로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지표에 암스트롱은 성조기를 꽂았다. 성조기는 바람이 없는 곳임을 감안해 기역 자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50년 동안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이다.

최근 주말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서 아폴로 11호 기념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열렸다. 구름 때문에 화성은 볼 수 없었지만, 망원경으로 맨해턴 시청 꼭대기의 천사상은 자세히 보았다.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과학자들은 새까맣게 빈 것처럼 보이는 우주의 저 먼 ‘딥 필드’(Deep Field) 하나를 허블 망원경으로 열흘 간 계속 사진을 찍었다. 지구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하늘 전 면적의 2,4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극히 작은 영역이다.(각도로는 내 눈과 100미터 밖의 테니스공이 만드는 각도의 연장선에 해당한다.)

사진에는 놀랍게도 이 딥 필드에 3,000여 개의 빛점이 찍혔고, 이 빛점들은 각각이 하나의 항성(별)이 아니라 하나의 은하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무 것도 없는 듯한 우주의 먼 구석에 3,000여 개의 은하계가 천연히 돌고 있더라는 얘기다. 후에 성능이 개선돼 찍은 울트라 딥 필드(130억 광년 거리)에서는 1만개의 은하계가 찍혀 나왔다.

칼 세이건에 의하면 우주에는 약 10의 10승만큼의 은하계가 있고, 그 각각의 은하계에는 또 10의 10승만큼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10의 10승은 내가 세어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돈이라도 가늠이 힘든데, 하물며 우주의 차원에서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페스티벌 말미에는 이 딥 필드 이미지를 보고 교향곡을 작곡한 에릭 휘테커(Eric Whitacre)가 교향곡 일부인 합창곡을 라구아디아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연했다. 휘테커는 4세부터 87세까지 120개국에서 모은 8,000명의 합창단원과 함께 이 곡을 공연한 적이 있다. 자신의 지휘 화면을 각 나라의 합창단원에게 보내 연습시킨 후 한 날 한 시에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영상통화 기법으로 합창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이를 가상 합창단(Virtual Choir)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그는 음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위테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위대한 우주와 그 질서,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우리는 그 우주에서 하모니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며 새삼 감격스러웠던 것도 과학이나 애국, 이데올로기의 승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과 한계를 넘어 무엇인가를 해보고자 분투하는 인간의 노고와 용기, 그것 때문이었다.

황무지에서 걸음마를 하는 인간의 위대함은 그들이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눈 생명의 연대성 때문이었다. 과학이고 권력이고 경제고 간에, 인간이 먼저인 것이다.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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