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홍콩은 왜 분노하는가

2019-06-21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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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주말 딸이 홍콩에 있었다. 홍콩 현지 친구들과 시위에 참가했다며, 시위는 평화적이었다고 전했다. 시위 첫날인 6월 9일 100만 명이던 시위대는 일주일 사이 200만 명으로 불어났다. 검은색 옷을 챙겨 입고 나온 사람들의 검은 물결은 망망대해와 같고,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그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한발 뒤로 물러섰다. 홍콩을 분노로 몰아넣은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단기간의 안도일 뿐”이라고 딸은 말했다. 거대한 중국의 압력을 손톱만한 홍콩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홍콩 젊은이들 마음의 풍경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니 투쟁한다.

우연한 사건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2019년 여름 홍콩을 민주항쟁의 장으로 만든 단초 역시 어이없게도 우연한 사건이었다. 스무 살 남녀의 불장난이 발단이다.


2년 전 여름 요리^미용 전문학교에 다니던 푼 휴윙은 알바 하던 곳에서 대학생 챈 통카이를 만났다. 사랑에 빠진 둘은 사귄 지 몇 달 후인 지난해 2월 타이베이로 밸런타인스 데이 기념여행을 떠났다. 여행 며칠 후 둘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야시장에서 산 핑크색 트렁크에 짐을 어떻게 쌀 지를 놓고 밤새 싸웠다.

임신 중인 여자가 남자를 자극했다. “아기 아빠는 전 남자친구”라고 말하자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바뀌고, 격분한 남자는 여자를 목 졸라 죽였다. 핑크색 트렁크 안에는 죽은 여자가 들어갔다. 이튿날 남자는 트렁크를 인근 지하철 역 부근 숲속에 버리고 홍콩으로 돌아갔다.

딸이 돌아오지 않자 휴윙의 아버지가 홍콩 경찰에 신고를 하고, 타이베이 경찰의 공조수사로 챈은 체포되었다. 하지만 범행장소가 대만이어서 홍콩 당국은 그를 살인혐의로 기소할 수가 없고,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어 대만으로 송환할 수도 없었다. 결국 챈은 죽은 여자의 신용카드를 쓴 것과 관련, 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29개월 징역형을 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4월말의 일이었다.

강력범죄가 별로 없는 홍콩과 대만에서 이 사건은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홍콩정부는 이를 계기로 범죄인 인도 법안을 만들고 입법화 절차에 들어갔다. 사법체계의 구멍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문제는 범죄인 인도 지역으로 대만뿐 아니라 중국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것이 홍콩시민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홍콩은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의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 70년대 대기근을 피해서, 문화혁명기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수백만 본토인들이 홍콩으로 넘어온 것을 비롯, 홍콩은 항상 중국난민을 따뜻하게 맞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에는 ‘노란새 작전(Operation Yellowbird)‘이라는 지하운동을 통해 반체제 인사들을 홍콩으로 도주시키기도 했다.

범죄인 인도법이 제정되면 언제 누가 어떤 죄목으로 중국으로 송환돼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것이 홍콩시민들의 현실적인 불안감이다. 홍콩의 자유와 법치는 끝난다는 두려움이다. 젊은이들이 검은 옷을 입고 도심 시위장으로 몰려드는 배경이다.

홍콩은 중국에게 ‘사생아’와 같은 존재이다. 홍콩은 이제껏 따로 살았으니 그냥 내버려 달라고 버티고, 중국은 ‘사생아’도 자식이니 챙겨야겠다고 나선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유롭게 자란 ‘사생아’는 공산당 독재체제 ‘부모’의 손아귀에 가능한 한 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홍콩의 젊은이들은 불안해한다고 딸은 전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 패해 1898년 홍콩을 영국에 넘겼고, 조차기간 99년이 끝나면서 1997년 7월1일 되찾았다. 영국 통치 하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렸던 홍콩 시민들은 중국 공산당 통치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때 중국이 한 약속이 한 나라 두 체제, ‘일국양제’였다. 50년 동안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며 간섭하지 않겠다는 서약이었다.

하지만 이후 22년, 중국은 호시탐탐 홍콩을 압박해왔다. 그때마다 젊은이들은 투쟁으로 대항해왔다.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2012년 국민(정신)교육 교과목 신설 등 중국의 시도에 수십 만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막아냈고, 2014년 가을 79일의 대규모 시위 ‘우산 혁명’에 이어 이번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 시위로 정점을 이루었다. 인구 740만인 홍콩에서 200만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것은 젊은이들 거의 모두가 거리로 몰려나왔다는 말이 된다. 시위대는 문제의 법안 연기가 아닌 완전 폐기 그리고 캐리 람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에 맞서는 출발점은 분노이다.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써 표출하는 것이다. 분노의 대상이 국가일 때 그 구성원이 공익을 위해 연대하며 집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저항하는 행위는 시민불복종이 된다.

홍콩은 시민불복종의 장구한 도정에 서있다. 50년 자치권 기한인 2047년까지 앞으로 28년. 젊은이들이 중년이 되는 그때까지 인권과 자유, 법치를 기어이 지켜내기를 바란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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