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상화와 정체성

2019-06-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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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영어 이름 ‘August’는 제정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저(Augustus Caesar)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황제’의 이름을 딴 달이다. 그러니 큰 달(31일)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본래는 작은 달이었지만 9월에서 하루를 감해 작은 달(30일)로 강등(?)시키고 ‘August’를 큰 달로 만든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 황제는 신으로 받들어졌다. 그런 만큼 황제를 우상화하는 것은 당연시 됐던 것. 그 일환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은 달력에 영원히 각인된 것이다.


최고 권력자 우상화 작업은 이후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스탈린 우상화 작업이다. 스탈린 추종자들은 동상 제막도 모자라 툭하면 지명에다 스탈린의 이름을 붙였다.

그로 그친 게 아니다. 예수 탄생이 아니라 스탈린의 생년을 원년으로 역법을 바꾸자는 청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하다 싶었는지 스탈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는 서력으로 2019년이다. 북한 달력으로는 주체 108년이다. ‘민족의 태양이자 영원한 수령’ 김일성이 태어난 해가 1912년이다. 그 해를 원년으로 북한은 이른바 ‘주체력’이란 걸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일찍이 스탈린도 못한 위업을 이룩한 것.

‘단연 세계 랭킹 1위’- 북한이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이 부문의 타이틀 중 하나가 수령 우상화 작업이다. 김일성-정일-정은, 3대로 이어지는 수령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기 위해 별 희한한 짓을 다 벌이고 있다.

주체력 채택이 그 하나. 또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일성’이니 ‘정일’이니 ‘정은’으로 지었다가는 신성모독으로 처벌된다. 비슷한 발음의 이름, 예컨대 ‘정훈’ ‘일석’도 안 된다. 아기가 수령의 생일에 태어나면 무조건 생일을 바꿔야 한다.

보훈의 달 6월 대한민국에서 희한한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현충일에 6.25 남침의 한 주역인 김원봉에게 ‘눈물어린 추도사’를 헌정했다.

그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평화센터는 고 이희호 여사 빈소에 보내온 김정은의 조화를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화는 장례식이 끝나면 묘지에 함께 묻거나 폐기 처분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왜.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렸을 때 북한 응원단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서 김정일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비바람에 노출돼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군님 사진을 이런 곳에 둘 수 있느냐”며 항의하는 소동을 벌였었다.

관련해 평화센터 관계자는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북한에서 보낸 조화를 함부로 폐기할 때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기는…. 그러나 과연 그래서일까.

수령의 ‘하사품’을 신성시해야한다. ‘최고 존엄’이 남긴 흔적은 털끝 하나까지 보존해야한다. 북한의 그 수령 우상화 멘탈리티에 부지부식 간에 동화된 것은 아닐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져도 마치 졸고 있는 것 같은 한국사회의 반응이다.

김정은이 보낸 조화를 신성시한다. 그 이면에는 무슨 메시지가 숨겨 있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허물겠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게 한국사회 같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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