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은 영화광으로 유명하다. 대통령 재임시절에 그가 본 영화는 무려 500여 편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가장 좋아한 영화는 ‘패튼(Patton)’이다. 2차 대전의 영웅 패튼 장군의 활약을 그린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다고 한다.
그 타이밍은 캄보디아 폭격이 이루어졌을 때다. 때문에 닉슨의 캄보디아 확전 결정은 영화 ‘패튼’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거의 사실인 양 굳어져 있다.
대중이 즐기는 영화에는 종종 삶과 직결된 소재가 다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대중문화 작품이자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도구도 된다.
1,000만이상이 관람했다. 거기다가 그 영화 내용이 권력이나 사회부조리 등을 다루고 있을 때 곧잘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요즘 한국의 정치풍토다. 이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올랐다고 할 정치인은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때였던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후보였던 정치인 문재인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은 유튜브로 공개돼 4만 여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화를 이용해 눈물을 숨기지 않는 ‘감성팔이’를 불사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중, 그러니까 수백만, 혹은 1,000만이 넘는 유권자에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온 것이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영화가 던져준 메시지를 정책이나 국정방향에 연결시킨다. 그게 ‘문재인 정치’의 한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택시 운전사’를 본 뒤 문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이 아직도 다 규명되지 못했다고 말하고 헬기 사격의혹에 대한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도 원전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보고 내려졌다는 구설수가 뒤따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북한 공산군의 6.25 남침의 주요역할을 담당한 확실한 공산주의자다. 그 김원봉에게 대한민국이 훈장을 주어야한다는 서훈 논란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관람객 수가 1,200만이 넘은 영화 ‘암살’을 보고 김원봉에게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도사는 6.25의 호국영령이 아닌, 김원봉에게 바치는 추도사가 되고 만 것이다.
좌파본색의 발로인가. 아니면 대중의 감성에 파고드는 포퓰리스트적 발상인가. 그 둘 다로 보인다. 보훈처는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독립운동 인명사전 특별판에서 김원봉을 뺐었다. 북에서 6·25전쟁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라 검토대상도 아니라고 했던 것.
그러다가 권력의 심부로부터 무슨 지시가 있었는지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원봉 서훈 근거에 대한 국회질의에 보훈처는 “영화 ‘암살’을 1,200만 명이 봤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돼 하는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일수록 사실과 다른 허구가 더 많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흥행에 성공하면 그 영화 내용은 국가정책이 된다. 그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