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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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탁본·훈민정음 해례본 ‘남가주 나들이’

2019-06-10 (월) 글 하은선 기자·사진 LA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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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CMA 한국 서예전 16일 개막, 추사체 등 국보·보물급 100여점 선봬, 이응노 화백·서세옥·김순욱 선생 등

▶ 수묵 추상 현대 서예까지 총망라, 김종원 퍼포먼스·천경우 작가 만남도

광개토대왕비 탁본·훈민정음 해례본 ‘남가주 나들이’

훈민정음 해례본(The Proper Sounds for the Instruction of the People, 1446)

광개토대왕비 탁본·훈민정음 해례본 ‘남가주 나들이’

박대성 작품 ‘The Beau-tiful Land of Korea’


광개토대왕비 탁본·훈민정음 해례본 ‘남가주 나들이’

추사 김정희 ‘곤륜산에서 코끼리 타기’(Riding an elephant on Mt. Gonryun)


광개토대왕비 탁본·훈민정음 해례본 ‘남가주 나들이’

천경우 작품 ‘빛의 필적’(Light Calligraphy)


LACMA 기획전 ‘선을 넘어서: 한국 글씨 예술’(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은 아시아권 밖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한국 서예전이다. 미 서부 최대 규모의 미술관인 LA카운티뮤지엄(LACMA)의 동양국 국장인 스티븐 리틀 큐레이터가 4년에 걸쳐 조사, 연구 끝에 선보이는 전시다. 오는 16일 레스닉 파빌리언에서 개막하는 LACMA 한국 서예전은 고대 전서부터 현대 글씨까지 한국 국립박물관, 한글박물관, 간송미술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 박물관들과 개인 수집가들로부터 대여한 국보·보물급 유물 등 100여점의 귀중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한국 미술의 근간이 되는 서예를 시대별, 사회계층별로 분류, 전시한 LACMA 기획전을 소개한다.

약 2,000년에 걸쳐 한국 사회의 계층별 서예의 역할에 중점을 둔 LACMA 한국 서예전은 선사시대 글씨부터 불교 서예, 왕실 서예, 양반 서예, 그리고 ‘추사체’로 상징되는 추사 김정희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출현을 주목하고 현대 서예를 총망라한다.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왕의 공적을 기리고 묘지기를 책정하기 위해 세운 석비인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탁본이 전시되고, 백제 의자왕 시절 대좌평 사택지적이 세운 비석으로 추정되는 ‘사택지적비’(the Epitaph on the Monument for Sataek-Jijeok in Baekje, 654) 탁본을 볼 수 있다. 사택지적비는 석주형 비석에 1행 14자로 4행 총 56자를 한 자씩 음각했는데 세월의 덧없음, 늙음에 대한 탄식, 불교에 귀의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백제귀족들이 향유했던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중기의 사역원 역관인 강우성이 일본어 학습서로 편찬한 ‘첩해신어 2권’(1699) 그리고 한국 서예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1786~1856)를 집중 조명한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한자 필체 5체를 마음대로 오가며 그림 같은 글씨를 쓰는 ‘추사체’의 상징 김정희 작품으로 ‘곤륜산에서 코끼리 타기’(Riding an elephant on Mt. Gonryun), ‘석각화유마송’(Sosik Poem on Seokgak Painting of Yu Ma) 등 8점을 선보인다.

■한글의 출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70호 ‘훈민정음’(The Proper Sounds for the Instruction of the People, 1446) 해례본이 ‘한글의 출현’을 보여준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1443년(세종 28년) 창제해 1446년 반포했는데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은 해례가 첨부돼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불린다.

LACMA 한국서예전에는 조선시대 18세기 중·후반 글씨로 추정되는 ‘노비상계문서’(Sanggye Documents)를 볼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를 통해 공개한 ‘상계 문서’는 18세기 경남 진주 재령 이씨 종가의 고문서 더비에서 발견된 한글문서다. 이 집안 노비와 마을 백성의 이름이 상계(상을 치르고 제사 지내는 일을 서로 돕기 위해서 만든 계)를 한글로 자세히 적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양반은 물론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에게 널리 쓰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현대를 넘어서(Beyond the Modern)

‘선을 통한 인간’의 조형성을 서너번의 붓놀림으로 완성하는 산정 서세옥 화백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정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세옥 화백은 ‘소와 소년’(Cow & Boy), ‘사람’(Person) 등 수묵 추상작업으로 유명하다. 점과 선의 파격적인 수묵 추상작업으로 한국현대미술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인간의 형상을 토대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동양화의 전통적 필묵이 갖는 현대적 감각을 발견, 전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아우른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사람’(People, 1986)이 전시된다. 말년 인간 군상 작업에 몰두한 이응노 화백의 시대 의식과 호흡하는 예술에 대한 고뇌와 탐구를 볼 수 있다.


현대 서예의 선구자로 미국에서 ‘아트 오브 잉크 인 아메리카’를 창설, 활발하게 활동했던 고 하농 김순욱 선생의 ‘무’(Emptiness, 1996), 서예의 일필휘지를 연상케하는 즉흥적이면서도 율동감 있는 선의 세계를 보여주는 오리작가 이강소의 ‘허’(Emptiness, 2014) 등을 한국 서예와 연계한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수묵의 표현으로 유명한 한국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의 작품도 전시된다.

■아티스트와의 만남 행사

7월 중순 중견 서예가 김종원의 ‘신들린 획’을 볼 수 있다. 경남도립미술관장이자 사단법인 한국문자문명연구소장인 다천 김종원 선생이 LACMA 서예전 아티스트와의 만남 행사에서 화려한 붓놀림으로 서예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는 김종원 선생이 지닌 가장 큰 붓으로 ‘획’을 통해 서화동체, 텍스트와 이미지, 내용과 조형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직접 보여주게 된다. 다양한 서법을 통섭한 김종원 선생에게 획이란 선과 면이 하나로 통섭되는 것이다. 서양미술에서 20세기 중반 개념이 생긴 스트로크(Stroke)와 유사한 붓질이다.

LACMA 서예전의 두번째 아티스트는 인간의 필체를 사진작업에 도입한 작가 천경우다. 8월 작가와의 만남을 갖는 천경우는 2004년 한국의 젊은 서예가들과 함께 작업한 ‘빛의 필적’(Light Calligraphy) 시리즈를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허공이라는 보이지 않는 화선지 위에 쓴 글씨와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시간개념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 천 작가 특유의 장시간 노출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어둠 속에서 시간의 축적을 통해 흐릿한 인물의 형상을 만든 기존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동양의 전통예술인 서예의 흔적을 남겨 ‘동양의 근원적인 정신과 미학’을 사진으로 구현하고 있다.
27일 조인수 박사 강연회와 9월21일 이동국 강연이 마련돼 있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LA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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