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① ‘극한의 땅’ 지구의 남쪽 끝을 가고 싶었다

2019-06-07 (금) 글·사진=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크게 작게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① ‘극한의 땅’ 지구의 남쪽 끝을 가고 싶었다

산행 첫날 그레이 산장에서 올라가는 도중, 뒤편에 보이는 빙하의 길이는 24km. 왼쪽은 아내 로즈마리.

파타고니아 배낭 여행기 ① ‘극한의 땅’ 지구의 남쪽 끝을 가고 싶었다

마젤란 해협에는 이런 산같은 빙하가 수백 개가 있다. 탐험선이 커서 빙하에 접근이 안되므로 해병대에서 쓰는 고무보트로 이 근처에 상륙한다.



출발 전야의 불안감…“500 마일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는데“
남극과 제일 가까운 땅… 편한 여행 뿌리치고 자연에 도전하기로
아내와 자유배낭여행 떠나기 전 몇 달 동안 인터넷 뒤지며 공부
파타고니아“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칠레 땅에 있어

지구의 외로운 땅 끝을 가보고 싶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 겨울엔 눈과 바람 때문에 여름에만 방문객을 받아들이는 곳, 빙하와 얼음폭포와 눈 덮인 평원, 수십 만 마리의 펭귄이 뒤뚱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무인도가 있는 곳, 바람의 땅이라는 , 파타고니아……갔다와서도 이 말만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이 곳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글에서 위험하고 고생스럽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할 곳이라는 말에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은 일생일대의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한다. 나는 편한 여행을 포기하고 동토에 텐트 치고, 배낭 짊어지고, 바람 맞으며 험한 자연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더구나 모든 땅 중에서 남극과 제일 가깝다는 이곳. 남극과 나는 서로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500년 전 마젤란 일행이 영겁의 신비를 벗긴 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극한의 땅(LAND OF EXTREME)를 찾았을 것이다. 관광 그룹의 가이드를 따라 다니면서 고급 호텔에서 지내기보다 배낭 메고 걸으며 때로는 텐트에서 광야의 밤을 보내는 외로운 나그네가 되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칠레와 파타고니아 리서치를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 안데스 산맥 줄기를 따라 태평양 연안에 작은 선을 그리고 그 끝에 파타고니아가 있고, 더 남쪽에 남극이 있다. 뉴욕이 한 겨울이면, 칠레는 한여름 (12월~2월 )겨울이 되면 현지인을 제외하면 인적이 끊긴다. 긴 겨울과 오랜 빙하기에, 눈이 쌓이고, 얼음이 두터워지고, 바람은 늑대 같은 울음을 터뜨리며 캄캄한 바다를 강타한다.

출발 전야의 불안감. “500마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도 걸었는데?“ 파타고니아를 가기로 작정하면서 아내로즈마리에게 물어 봤다. “당신 괜찮을까?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에 비하면 거의 오지 탐험 수준의 여행인데“ 아내는“ 발톱까지 빠지면서 한 달 이상을 500 마일의 순례 길도 걸었는데. 이번 여행은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그때보다 훨씬 짧으니 한 번 도전해 봐요.”

우리는 눈빛으로 다짐했다. 더 늙기 전에 다녀오자고. 숙소 예약은 피크 시즌이라 불가능했기에 캠핑을 하기로 했다. 물론 캠핑장도 예약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숙소가 가능하면 언제든지 숙박할 계획은 세우고 있었다. 여행사를 통한 가이드 예약도 생각은 했으나, 우리가 도전 하는 트레킹을 해 주는 한국 여행사는 없었다. 현지 사정과 지리, 스페인 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마음의 부담은 되었지만, 나는 아직 젊고 못 할게 없다는 마음이었다.

내 식당에서 문 닫고 집에 오면 대부분 새벽 1시가 넘는다. 피곤한 몸으로 누워 생각해 본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 전투 같은 일상들이 모여서 내 ‘일생’이 되어 버리고,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그냥 잠만 자고 나간다면, 인생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자기 전에 꿈을 꾼다. 깨어 있으면서 꾸는 꿈 중에 하나가 버킷 리스트를 보며 거기를 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잠들기 전에 어디든지 가는 꿈을 꾸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기도 하면서 쉬운 일이기도 하다. 시간만 나면 버킷 리스트를 읽는 중에, 살면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하는 곳의 리스트 중에 “파타고니아( Patagonia )” 란 말을 본 것은 몇 년 전이었다.

“파타고니아를 간다” 는 말은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Paine)”을 걷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곳에 대한 설명 중에 이곳은 우리가 살고 있고, 보았던 지구가 아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주선을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다른 행성, 지구에 이런 곳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 곳,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손에 꼽히는 곳, 토레스 델 파이네.
살아있는 동안, 내 몸뚱이가, 다리가 내 생각에 따라 움직여 줄 때, 가야 한다는 생각에 들기 시작했다. 여행사를 통해 알아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여러 타입의 고객의 건강과, 나이. 입맛에 맞춰 일정을 짜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도 아니다. 흔히 보는 깃발 여행처럼 버스 타고 멋진 곳이 보이는 전망대 앞에서 사진 찍고 오는 그런 여행은 나하고는 적성이 맞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누구를 따라 다니는 성격이 아니다. 여행사를 통해서 간다면 분명 인증 사진만 찍고 올텐데, 그런 건 공짜로 보내 줘도 따라가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시간만 나면 구글 지도를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검색어를 넣어서 읽고, 분석하고,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면서 거의 고시 공부하듯 공부를 했다. 나가 보지 않고도 그곳의 여행 가이드를 해도 좋을 만큼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고시도 패스했을 것이다.


이곳은 지구 모든 대륙 중 최남단에 붙어 있다. 즉 모든 대륙 중 남극과 제일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 하는 내 성격으로 서쪽으로는 티벳, 동으로는 아이슬랜드 바다 끝, 영하 30도의 캐나다 북쪽 끝을 다녀왔지만, 아직 남쪽은 안 가봤으니 여긴 갔다 와야지 하는 희망이 있으면 뭘 못하겠는가? 비행기 표만 끊으면 발로 걷기 때문에 거의 돈도 들지 않는 자유 배낭여행인데.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어릴 때 보이스카웃을 할 때부터 수많은 야영 생활을 해 봤지만, 이번만은 자연 환경이 전혀 다른 곳이라 걱정도 많이 되었다. 12월이 그곳은 여름이라지만, 뉴욕으로 치면 4월 초 이른 봄 날씨. 날씨 변덕이 심해서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겪기 때문에 거기에 필요한 준비를 다 해야 된다. 다른 곳에서는 겪어 보지 못하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무서운 바람이 안데스 산맥에 부딪혀서 불어오는 바람과 비에 대한 준비도 해야 되었다. 아내와 일주일 정도 먹을 음식으로 누룽지도 만들어 가야 했다. 누룽지를 끓여서 김치와 먹는 것처럼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없다. 며칠간 산속을 걸으려면 일단 속이 든든하고 편해야 한다. 문제는 김치는 아무리 비닐로 포장을 잘 해도 시간이 지나면 김치가 익고, 팽창을 해서 터져버리고 국물이 흘러나온다. 비행기 안에서 터지면 이건 테러도 보통 테러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김치를 썰어서 올리브기름에 살짝 볶아서 유산균을 죽여 버리면 시간이 지나도 팽창도 되지 않고, 씹으면 생김치처럼 아삭거려 어딜 가도 마음 놓고 꺼내 먹을 수가 있다. 텐트와 침낭, 옷, 식량 등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수도 없이 쌌다 풀었다 해서 꾸린 내 배낭의 무게가 50 파운드. 들어올리기도 버거운 배낭이지만,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떠난다는 들뜬 마음 때문인지 걱정은 되었지만 기분은 들떠 있었다. 여행사를 통해 깃발 여행을 하면 돈은 많이 들어도 갈아입을 옷만 몇 개만 챙기면 되기에 편하긴 하다. 그러나 자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기막힌 경험은 결코 할 수가 없다. 무엇에게 얽매이지 않고, 누구에게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로움,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시간 구애 받지 않고 그 곳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자유 여행의 장점이다. 모처럼 여행을 가서 까지 쫓기듯이 따라 다닐 이유가 없다.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은 칠레 땅에 있다. 뉴욕에서 칠레를 통해서 가는 것이 경비가 훨씬 적게 든다. 많은 곳을 자유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사를 통해서 오는 관광객을 만났는데, 여행사는 인건비, 광고비, 회사 이익 등이 첨가되기 때문에 자유 여행보다 경비가 두 세배 정도가 더 든다. 아쉬운 점은 단체 그룹은 모든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지역만을 짧은 시간 내에 가야 되기에 자유 여행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의 여유와 꼭 가야 될 곳을 안 가고,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자유 여행은 ‘생각’ 할 때부터가 여행의 출발이고, 깃발 여행은 ‘떠나는 날’이 여행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긴 시간을 싼 비용으로 하는 여행을 좋아 한다. <계속>

<글·사진=토마스 이/ 자유 여행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