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에 대한 단상
2019-06-07 (금) 12:00:00
김영중 수필가
여행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완성된다고 한다. 두 달 동안 집을 떠나있었다. 생활공간을 바꾸고, 날개 달린 듯 날아다니며 이곳저곳 세상구경을 하고 새로운 것들과 만난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나의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아름답고 황홀한 자연의 풍경들을 원 없이 보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도 보았다. 도시가 그렇고, 건물들이 그랬고 생활용품, 생활전통이나 생활양식도 그랬다. 전에는 여성들의 전용물이었던 장식품들을 지금은 남성들도 애용하고 있었다. 색깔로 물들인 헤어스타일에 소녀처럼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남성들의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그런가하면 젊은 세대는 앉으나 서나 손에 쥔 핸드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몰입하고 있어 옆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도 않아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 공간 안이나 곁에 있으면 눈인사를 교환하던 시절과는 아주 다른 현상이다.
지금 세계는 벽을 허무는 시대다. 사회현상은 일정한 틀이나 사고를 깨는 해체라는 단어에 모든 것이 귀결된다. 기존의 것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다양한 가치와 그로 인한 존재의 의미를 확대하려는 흐름이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것은 더욱 아름답게, 더욱 정답게 보였다. 그리움을 자아내며 애절한 정감을 줄 때가 많았다. 정답던 사람들이 그렇고 사랑하던 물건들이 그렇고 정답게 하던 정경들이 그랬다.
소중한 것들이 해체나 개발이란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옛 모습이 마구 없어져 가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다. 세상사가 모두 만났다 헤어지기 마련이지만 떠나는 것들, 소멸해가는 것들은 그리움을 남긴다. 인생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는 변화의 세상을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유럽을 여행하며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은 그 유구한 ‘어제’들이었다. 찬란했던 어제의 유적들이다. 오랜 역사가 쌓여서 눈부신 문화로 남아 있다. ‘어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어제’들이 남아서 오늘 후손들의 관광자원으로 돈이 되는 것이다. 로마가 대표적이었다.
해체가 글로벌 시대의 본령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서울에서 옛날을 찾아보려면 인사동 거리로 나가야 했다. 그곳에서는 그런대로 옛날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것과 내일의 것이 우리의 옛 문화를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것 위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더해가는 내 고국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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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