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운 사이즈’에 나서는 베이비 부머 감소 추세
▶ 오히려 큰 주택으로 이사하려는‘무브 업’경향
자녀, 손자와 함께 살기 위해 더 큰 집으로 이사
결혼, 내 집 마련, 자녀 출산, 더 큰 집으로 이사, 그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 소위 ‘아메리칸드림’으로 대변되는 미국 가정의 전형적인 삶의 순서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간 마치 교과서처럼 여겨졌단 이 같은 삶의 과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이 치솟고 다운사이즈 용도의 적당한 집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마지막 과정인 작은 집으로 이사를 포기하는 베이비 부머가 늘고 있다고 USA 투데이가 최근 보도했다.
◇ 다운 사이즈? 노 땡큐!
현재 거주하는 주택보다 규모가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뜻하는 ‘다운 사이즈’에 나서는 베이비 부머가 감소 추세다. 대신 자녀를 키우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은 주택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하는 베이비 부머가 늘고 있다. 부동산 매물 정보 업체 트룰리아닷컴의 알렉산드라 리 주택 시장 데이타 분석가는 “다운사이즈를 택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많지 않다”라며 최근 추세를 설명했다.
연령대가 높은 베이비 부머 세대 중에는 다운사이즈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연령대가 낮은 베이비 부머 세대 중에는 다운사이즈 비율 감소 현상이 뚜렷하다. ‘젊은’ 베이비 부머 세대 사이에서 60~70년대 가족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형성된 ‘은퇴 후 다운사이즈’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운사이즈에 나서는 베이비 부머 세대 증가로 매물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재 보유 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계속 거주하는 ‘스테이 풋’(Stay Put)을 선택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늘고 있다. 주택 가격 급등과 매물 부족 현상으로 다운사이즈 용 주택 매물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베이비 부머 세대가 스테이 풋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54~73세 사이의 연령대로 이중 은퇴 시기를 늦추고 직장을 갖는 비율도 늘고 있으며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한 목적으로도 다운사이즈를 미루고 있다.
◇ 지금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
올해 초 체이스 은행이 753명의 베이비 부머 주택 소유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약 52%의 응답자는 현재 거주하는 주택에서 이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7년 여론 조사 기관 ‘입소스’(Ipsos)와 USA 투데이가 45~65세 연령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약 43%가 은퇴 후에도 현재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계획이라고 답해 ‘스테이 풋’ 현상은 2년 전부터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은퇴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다운사이즈 대신 스테이 풋을 선택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증가하는 원인이다. 기대 수명 연장으로 은퇴 기간이 늘면서 필요한 은퇴 자금 마련을 위해 노년에도 일을 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크게 증가했다. 연방 노동국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년층 중 현재 일을 하고 있거나 구직 활동을 하는 비율은 1996년 약 12.1%에서 최근 약 20%로 늘어났다. ‘미국 은퇴자 협회’(AARP) 공공 정책 연구소는 10년 전 발생한 경기 침체 여파로 힘들게 모은 은퇴 자금을 잃은 노년층이 많아진 것도 은퇴 시기가 늦춰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제프 레비(58) 보험 중개인은 70세가 넘어도 일을 그만두지 않을 계획이다. 휴스턴 인근의 약 3,900 평방피트 짜리 주택에 살고 있는 레비 중개인은 직장에서 1마일도 안되는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먼 곳에 위치한 주택으로 다운사이즈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인 셸리(55)의 경우 다운사이즈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현재 집을 팔고 같은 가격대의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한다 점 때문에 다운사이즈를 꺼리고 있다. 부부는 “현재 자녀들이 결혼하고 손자 세대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라며 다운사이즈 계획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 아직 젊으니까 큰 집으로 이사하겠다
요즘 베이비 부머 세대 사이에서는 젊게 살고 싶은 의욕이 강하다. 나이가 들어가도 젊게 살겠다는 의지가 베이비 부머 세대로 하여금 은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다운사이즈를 거부하게 하는 원인이다. 현재 거주 주택을 처분하더라도 다운사이즈 대신 오히려 규모가 더 큰 주택으로 이사하려는 ‘무브 업’(Move Up)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은퇴 지역인 플로리다와 애리조나 주에는 여전히 은퇴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주택보다 작은 규모로 이사하는 수요보다 적어도 규모가 같거나 큰 집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훨씬 많다. 55세 이상 거주 시니어 주택 개발 업체인 ‘델 웹’(Del Webb)이 올해 1월 50세와 60세 연령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중 약 43%가 적어도 현재 주택과 동일한 규모의 주택으로 이사하겠다고 답했으며 약 22%는 규모가 더 큰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트룰리아닷컴의 조사에서도 다운사이즈에 나서는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룰리아닷컴이 연방 센서국의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5년과 2016년 65세 이상 주택 소유주 중 단독 주택과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한 비율은 거의 비슷하게 조사됐다. 그러나 2016년의 경우 다운사이즈로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 이사 연령대는 주로 70대 후반으로 2005년 조사 때의 70대 초반보다 높아져 다운사이즈 시기가 미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 ‘내 집 마련’ 못한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해
베이비 부머 세대가 다운사이즈를 거부하는 이유로는 성인 자녀와 함께 거주, 다운사이즈 용도의 주택 매물 부족, 리모델링 실시, 모기지 대출 상환 등이 있다. 주택 구입 여건 악화로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살아야 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는 다운사이즈를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트룰리아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대학 졸업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시니어 주택 소유주 비율은 약 14.4%에서 2016년 약 16.1%로 증가했다. 경기 대침체 발생 직후인 2008년과 2010년 졸업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밀레니엄 세대 중 부모와 거주 비율이 특히 높았다.
다운사이즈 용도의 저가 주택 매물 가격이 급등한 점도 베이비 부머 세대가 다운사이즈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트룰리아닷컴의 조사에서 주택 가격대를 3등분 했을 때 가장 저가대 매물의 가격은 2012년과 2019년 2월 사이 연평균 약 8.03%씩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 가격대와 가장 높은 가격대 매물의 경우 같은 기간 연평균 약 6.39%와 약 5.01%의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
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