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러기는 홀로 날지 않는다

2019-06-01 (토) 12:00:00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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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기즈(wild geese)’는 북아일랜드 용병대의 별명이다. 대담하고 치밀하며, 첨단병기 사용에 능해, 위험한 임무를 한 치 오차도 없이 처리해 내는 엘리트 용병여단이다.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의 리더는 흑발 미남, 케빈 암스트롱. 카리스마 넘치는 그는 부드러운 신사의 매너도 함께 갖춘 비범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80년대, 영국감옥에 투옥된 300여명의 북아일랜드 정치범들을 전광석화처럼 구출해 낸 살아있는 전설이다.

와일드 기즈를 직역하면 ’야생 거위’쯤으로 잘 날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집 거위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와일드 기즈는 장거리를 나는 ‘기러기’가 주종(主種)이다. 이들은 세계에 약 40여종 되는데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골고루 서식한다. 북미에선 캐나다 기즈가 가장 흔하고, 한국과 일본 등 극동지방에선 갈색 털에 진황색 발을 가진 ’스완 기즈’가 많다. 우리가 부르는 가곡,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를 나는 그 멋진 조류인 것이다.

밀튼 올슨은 와일드 기즈를 소재로 여러 편 글을 남겼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이 철새들의 생태를 깊이 파고들어 일사불란한 기동력, 조직력 그리고 단체생활 속의 협동력을 소상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글을 보면 와일드 기즈가 왜 정예 용병여단의 마스코트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고, 과학자 못지않은 작가의 관찰력에도 놀라게 된다.


와일드 기즈는 백조와 청둥오리의 중간쯤 크기의 물새이자 철새다. 봄엔 북쪽 캐나다, 아이슬란드나 알래스카 등지까지 수천 마일을 날아가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되면 온 거리를 되돌아 따뜻한 멕시코나 플로리다까지 내려온다.

작가는 와일드 기즈의 특징을 5가지로 관찰하고 있다. 그는 철새들의 생태를 묘사하면서 인간들이 새겨들어야 할 비판과 교훈들을 흥미롭게 덧붙이고 있다.

첫째 특징은 이들이 V자로 나는 형태이다.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앞에 나는 새가 날개를 펄럭이면, 그것이 공기의 뜨는 힘, 곧 양력(揚力)을 불러 일으켜, 뒤에 따라오는 새가 날기가 훨씬 수월하다. V자 비행을 하면, 혼자 나는 거리의 72%나 더 멀리 난다는 과학적 사실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도 같은 목표를 향해 갈 때, 서로 밀어주면 훨씬 빠르고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음을 올슨은 상기시키고 있다.

둘째는 철새들이 날다가 잠시라도 대형에서 이탈돼 날개에 공기저항을 느끼게 되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장거리 비행에 힘을 아끼기 위해 그들은 불필요한 무리나 독불장군 행세는 피하는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철새만큼만 철이 들었다면, 모두에게 유익한 공동목표를 위해 사심을 버리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집 때문에 불화하고,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셋째, 이 새들은 앞장선 리더가 피곤해지면 곧 뒤로 돌아가고, 따라오던 새 중 하나가 앞으로 나가 대열을 이끈다는 점이다. 인간 공동체 생활에서 힘든 일과 리더십을 서로 나눌 때 단체가 발전하고, 구성원 전체가 득을 보는 점과 같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독선과 어려운 일은 남에게 미루는 습관은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새겨 보게 한다.

넷째, 이들은 장거리를 날면서 리더가 속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의 소리(honk)를 계속 낸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내는 소리 중 격려하는 소리가 얼마나 될까? 올슨의 지적처럼, 공동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뒷짐만 지고 있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고생한 사람들을 향해 불평하고 헐뜯는 행태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특징은 철새 중 한 마리가 아파 뒤쳐지거나 총에 맞아 떨어지면, 한두 마리가 대열에서 빠져 나와 뒤쳐진 철새를 돕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낙오된 철새의 죽음을 확인하거나, 다시 살아나 함께 날 수 있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본다고 한다. 얼마나 기막힌 협동심의 극치인가?

올슨은 곤경에 처한 동료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돕는 것이 진정한 동지애임을 강조하고 있다. 서로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생명을 나눈 동물들의 가장 큰 덕목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신화적인 용병대장 암스트롱이 부대를 ‘와일드 기즈’로 부른 데는 희생과 협동과 의리를 바탕으로 한 고결한 정신을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오늘을 사는 너와 나의 삶에 인간애의 고결성이 얼마나 살아있을까?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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