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쇼맨십
2019-05-29 (수)
김용제 안과전문의
김용제 안과전문의
최근 디즈니 홀에서 오랜만에 ‘피아노의 수퍼스타’로 불리는 랑랑의 연주회를 보며 즐겼다. 몇 년 전 독주회와는 다소 다른 연주 모습이었다. 그 독주회에서 랑랑은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엄청난 테크닉 뽐내기로 깊이 없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라 비꼬는 비평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이를 뒤집고 진지하면서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착실한 연주를 보여주어 필자를 다소 놀라게 했다. 베토벤의 다섯 피아노협주곡 중 제일 드물게 연주되는 2번 곡임에도 불구하고 랑랑의 이름 값은 평소보다 두 배를 내야 하는 티켓 가격에도 초만원을 이루게 했다.
랑랑의 장기인 테크닉을 보여줄 부분이란 하나도 없는 이 협주곡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다. 그에 보답하듯 랑랑은 빠를 것 같은 템포 선정과 반대로 느긋한 템포와 대단히 부드러운 톤으로 매우 서정적인 프래이징으로 이어가는 인상적인 연주를 선사했다. 부드럽다 못해 소리가 아예 안 들리기 직전까지 가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극단적인 표현은 비평의 대상이 될만도 하지만 효과적이었다. 그보다 더 특이했던 것은 쓰지 않는 팔을 들어 올려 흔들고 건반에서 손을 떼면서 높이 또는 옆으로 크게 올리고 때로는 몸을 뒤로 넘어질 듯 젖히며 심취하는 모습 등 다양한 액션이 눈에 거슬리기보다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쇼맨십은 순수파들에게는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것이란 비평을 자아내 과거의 명연주가들에게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순수한 감상을 넘어 즐거움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용서(?) 받는 추세다. 연주자는 물론 관객들도 전통적인 매너를 벗어나 마음껏 즐거움을 표하는 모습을 나무라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소리내기외의 동작, 즉 쇼맨십이 좋은 효과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세계적 바이얼리니스트 새라 장이 연주하며 무대 위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발로 마루를 쾅쾅 치는 동작은 음악의 감상을 해치기만 한다. 정경화의 극도로 집중하는 얼굴 표정을 보기 거북해하는 평론가들도 있었다.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은 실내악을 연주할 때 시작전 줄마추기를 남달리 오래하며 혼자만의 준비가 길어 같이하는 연주자들이 그를 쳐다보며 기다려야 했고 연주 중 다른 주자에 비해 혼자만의 눈에 띄는 몸짓이 자신에게 시선을 끌려는 듯 비춰 동료에 대한 예의 부족을 느끼게 했다.
이와는 정반대로 바이얼리니스트 얏샤 하이팻츠는 어떤 난곡이나 열정 넘치는 곡에서든 몸을 고정시키고 얼굴표정 하나 변함없으며 땀한방울 보이지 않아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는 얼굴표정과 몸짓이 소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했고 눈감으면 들리는 불꽃같이 뜨거운 소리를 내는 귀재였다. 아무튼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이제는 효과적으로 적절한 정도의 쇼맨십을 예술성 발휘의 일부라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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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제 안과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