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태격 사업가
꼭 1년 전이다. 지난해 5월 어느 화창한 주말, 한국의 전화번호인 듯 한 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한태격 선생님이시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여기는 서울입니다. 김세원 전 스웨덴대사님을 알고계시지요? 아직 생존해 계십니까?” “그럼요, 어제도 통화했습니다.”
“저는 김 대사님을 오랫동안 백방으로 찾아헤맸습니다. 아직 살아계시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아흔이 넘으시지요?”
“예. 그러십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저와 대사님이 가깝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는 서울의 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조상의 땅을 찾아주거나 그와 결부된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내용인 즉 “김 대사님이 공동명의 소유로 되어있던 서울의 부동산을 75년에 매각한 적이 있다, 그때 반듯한 땅은 팔고 별로 쓸모가 없던 자투리땅은 팔지 못했다, 얼마 전 그 자투리땅에 관심을 보이는 임자가 나타나 대지소유자를 찾고 있다, 2억 정도는 족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소유자를 찾을 수 없어 애를 쓰던 중 인터넷에 ‘김세원’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니 2017년 내가 쓴 ‘건국, 건군의 산 증인을 모시고’라는 칼럼 속에 김세원 대사가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칼럼 말미에 쓰인 내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생님의 배려로 이역만리에 사시는 김 대사님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진정 감사드린다. 이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 선생님에게도 섭섭지 않게 감사표시를 하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그에게 김 대사님 연락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은 즉시 플로리다에 계시는 나의 해군 대선배이신 김 대사님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인터넷 시대라서 가능했던 한 에피소드이다.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는 문인들이나 신문기자들에게 내 의견을 전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불만이 많았다. 그들의 글이나 신문기사 등 인쇄매체나 방송매체 모두가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만 전달될 뿐 독자로서, 시청자로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도 그들과 연락할 방도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최소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언제나 나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는 소신을 갖고 이를 실천해왔다.
글 말미에 반드시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적어놓아 언제라도 반론이 있으면 용이하게 글쓴이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취지로 연락처를 써 놓은 것이 위의 경우, 예상치 못한 선행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 연락을 받은 후 김 대사님은 수십년 만에 귀국해 지난 40년 간 뇌리에서 사라졌던 영등포구 상도동 땅의 토지소유권을 행사하고 돌아 오셨다. 주인이 없어 국고로 귀속될 뻔 했던 땅을 좋은 가격에 팔았으니 자녀들이 기뻐했던 것은 물론이다.
나 역시 전혀 기대치 않았던 두툼한 봉투를 두 분으로부터 감사의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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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격 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