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이와 시대와 한국

2019-05-17 (금) 이영묵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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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와 한국

이영묵 수필가

한국에 도착해서 며칠 머물다가 일본 후쿠오카 지역에 다녀왔다. 백제의 발자취가 얼마나 남아있고 그 영향이 어떠했나하는 호기심을 갖고 갔다.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까지 비행시간이 50분임을 알고 정말로 가깝다는 사실을 재삼 느껴졌다. 더구나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그리 일본 때리기에 열심인데 그것과 관계없이 작년에 일본 방문한 한국사람이 700만이라니 정말 놀랍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부처님 오신날 행사준비로 바쁜 조계사 구경도 했고, 광화문에서 보수당 데모 구경도 했고, TV를 통해 국회 난장판 구경도 했다. 또 연예계에서 발생한 성희롱이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일본은 어떠한가 하여 몇 가지를 묻기도 하고 관찰도 하였다.


일본도 소위 ‘미투’라는 것이 유행하느냐, 일본도 국회의원(중의원)끼리 서로 고소하느냐, 일본에서 대법원장을 위시하여 소위 판사라도 체포되어 감옥에 간 사건이 있었는가 궁금했다. 물론 내가 얻은 대답은 전부 한국과는 반대로 ‘노’였다.

일본하면 달리기 경기의 한 장면이 항상 떠오른다. 몇 바퀴를 선두주자 뒤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결승라인에 다다르면 스퍼트를 발휘, 치고 나가서 우승을 한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것은 이러한 식의 미국과의 경주 덕분이었다. 한국은 그것을 교과서 삼아 일본과 경주를 해서 오늘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침 일본 도착 다음날이 일본의 새로운 왕(천황)이 취임하는 날이었다. 소위 헤이세이 시대에서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취임하면서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리는 날이었다. TV는 온통 축제 현장 방송이었고, 밤에 불꽃놀이 정도가 아니라 신사마다 새로운 천황으로부터 축복 받기 위하여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뉴스 평론은 20년의 잃어버린 세대를 지나 새로운 도약을 염원하는 전 일본인들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얼마가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정치권 역시 여야 구별 없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한국도 이제 여도 야도 없고, 종북 수구도 없고, 전라도 경상도도 없고,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도 없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어떤 하나의 상징을 찾아야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와 언론에 금기가 있다. 일본 때리기는 허용하되 칭찬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산업 태동기에 수출산업에 종사했던 나에게는 일본이 산업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전한 생각이 나의 교과서였다. 나는 친일은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새로운 꿈의 희망 물결을 일으켜야 하겠다.

<이영묵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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