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9%의 기적’

2019-05-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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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날인 지난 12일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홈경기서 완벽한 투구로 시즌 5승째를 챙겼다. 류현진은 관중석에서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보던 어머니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겼다. 승수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투구 내용이었다. 류현진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이날 경기서 8회까지 단 한 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면서 완벽한 투구를 했다. 투수의 역량을 재는 가장 고전적인 수치인 평균자책점도 1.72로 낮췄다. 메이저리그 전체 3위다.

시즌 초반 류현진의 눈부신 활약에 최고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 상’ 후보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 하듯 며칠 전 LA 타임스는 류현진이 LA 다저스의 ‘에이스’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눈부신 호투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지난 몇 년 간 오늘의 류현진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는 시련과 역경이 끊이지 않았다. 2013년 한인들의 기대 속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첫해 14승8패, 2014년에는 14승7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메이저리그에 안착하는 보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류현진은 왼쪽 어깨의 찢어진 관절와순을 꿰매는 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은 투수들에게 가장 위험한 수술로 꼽힌다. 수술 후 1년 만에 복귀했지만 단 한 경기 등판에 그치고 또 다시 길고 긴 재활에 들어가야 했다. 2017년 25경기에 나와 5승9패, 그리고 2018년 15경기서 7승3패를 거두면서 재기 가능성을 보여줬다.


류현진이 관절와순 수술대에 올라갔을 때 누구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재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수술을 받은 투수들이 재기에 성공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야구전문지 기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이 수술 후 복귀에 성공한 경우는 16%였으며, 수술 전과 같은 투구로 롱런한 경우는 단 5.9%에 불과했다.

류현진은 보란 듯 ‘5.9%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단순히 롱런의 가능성을 넘어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진화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를 맡고 있는 수퍼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지난해 “류현진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바 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팬들은 이 말을 선수 몸값을 올리기 위한 마케팅용 발언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보라스의 ‘예언’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류현진은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긍정적이다. 투수에게는 강한 어깨, 좋은 공 못지않게 두둑한 배짱이 요구된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그의 성공적 재기는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 갓 건너온 류현진이 마운드에 올라 상대 타자들을 요리하며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한인들은 마치 자신이 해낸 일인 것처럼 으쓱했다. 그가 등판하는 날 맥주집들은 응원하는 한인들로 북적였다. 류현진은 고된 이민 생황에 위로와 재미가 돼주었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다저스 에이스의 역할을 감당하는 지금의 류현진은 그때와는 조금 다른 묵직한 자부심을 선사해 준다. 아마도 시련을 묵묵히 헤쳐 나온 그의 야구 역정이 이민자들의 그것을 닮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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