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중산층” 이라는 착각

2019-05-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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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충성을 약속하는 표밭이 ‘중산층’이다. 거리에서 무작위로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예스”라고 한다. 중산층은 정의가 명확치 않고, 소득으로만 분류해도 52%에 불과한데 실제와 관계없이 너도나도 중산층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중산층의 의미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직업과 교육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문화·교육·권력이 주요 요소라고 역설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의하면 부와 소득이라는 구체적 척도를 제시하는 경제학자들도 최소한 12가지의 다른 정의를 내놓고 있다.

계층 분류의 기준은 전국 중간소득이다. 센서스가 집계한 2017년 중간소득은 연 6만1,302달러로, 미국인의 절반은 그보다 많이 벌고 절반은 그보다 적게 번다. 프린스턴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는 중간소득의 50~150%에 속한 가구를, MIT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러우는 75~125%, 퓨리서치센터는 67~200%를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퓨센터가 집계한 중산층의 연소득 범위는 2016년 현재 3인 가족이 4만5,200~13만 5,600달러, 독신은 2만6,000~7만8,300달러다. 가족 숫자 뿐 아니라 거주지역과 대출여부에 따라 같은 연소득이라도 계층이 달라진다. 같은 독신이지만 생활비 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9만 달러를 벌면 고소득층으로 살 수 있어도, 10만달러의 학자금 빚을 안고 대도시에 살면 15만달러 연봉을 받아도 늘 페이먼트에 쫓기게 된다.

요즘 늘어나는 것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연봉 15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이다. 최근 온라인 미디어 패스트컴퍼니가 보도한 “왜 모두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가”는 고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나는 중산층”이라는 착각에 대한 분석이다.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특정 소득 액수보다는 자신과 자녀들을 위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한다. 그 극단적인 예가 CNBC가 보도했던 50만달러를 벌면서도 중산층으로 느끼는 부부의 경우다. 생활비 다 제외하고 남는 돈을 연 7,300달러로 집계한 그들의 가계부를 들여다 본 패스트컴퍼니는 “더 벌면 더 쓴다”라는 한 마디로 평가했다. 중산층에겐 ‘사치’로 생각하는 지출이 고소득층이 되면 ‘필수’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이유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소득층에게도 뿌리 내린 재정적 불안, 대다수의 전문직들이 안고 있는 막대한 학자금 부채, (화려한 킴 카다시안이나 3억달러 스포츠 계약 등의 세상은 상위 0.000001%일 뿐인데도) 미디어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상류층의 삶에 대한 과장된 인식 등이 이들을 “나는 중산층”이라고 느끼게 하는 배경이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의하면 가구 연소득 3만달러 미만 응답자의 34%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했다지만 미국인들이 되기 원하는 중산층은 일상에서 선택이 보장되고 두려움에 쫓기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다. 내집을 소유할 수 있는 봉급과 괜찮은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매달 페이먼트를 밀리지 않으면서 가족휴가 같은 작은 사치를 누리며 자녀의 대학학비와 부부의 은퇴저축을 부담할 수 있는 생활수준이다.

주거비에서 식비·학비·의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비는 날로 오르는데 제자리걸음인 봉급의 일자리마저 위협당할까 불안해하는 많은 보통사람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은 진짜 중산층이지만 “나는 중산층이 못 된다”라는 좌절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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