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라지는 성씨

2019-05-10 (금) 12:00:00 장동만 /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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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성(姓)과 이름(名)이 있다. ‘성’은 한 조상의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겨레붙이들이 공통으로 갖는 칭호이고, 이름은 나만이 유일하게 갖는 독자적인 칭호다. 그런데 우리의 ‘성’과 이름은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성’에는 본관이 있어 가문을 나타내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구성돼 있어 개인 구별은 물론 가문의 계대까지 나타내는 복잡하고 특이한 구조의 ‘성’과 이름이다.

그런데 이 땅에 이민 온 우리는 ‘성’을 이미 잃었거나, 또는 점차 잃어가고 있다. 여자들은 여기 법에 따라 자기 ‘성’을 버리고 남편 ‘성’을 따라 쓴다. 서구 여성인권주의자들이 왜 이를 이슈로 삼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그리해서 그들의 ‘성’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남자들은 본래 자기 ‘성’을 쓰지만 이를 영문으로 표기하는데 있어 소리나는 대로 음만을 알파벳으로 옮겨 본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종의 ‘아바타 성씨’가 돼버렸다. 예컨대 ‘장(張)’을 ‘Jang’ ‘Chang’ 또는 ‘Jaang’으로 표기하는데, 이 단순한 소리표가 ‘장’이 지닌 역사적인 유래와 전통적인 고유한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각각 다르게 표기된 ‘성’이 같은 패밀리 네임(Family Name)이라고 말한다면 영어권 사람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2세, 3세로 내려가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니 그렇다 치고, 남자는 아버지 성을 따르겠지만 그 성씨 개념이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문으로 된 패밀리 네임을 가진 그들, 한자로 된 아버지/할아버지 성을 알아보고 이해할 것인가? 한국에 있는 종친들과 어떤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장례 때 그 명패에는 성과 이름이 모두 영어로 표시될 테니 그 조상이 ‘장(張)’이라는 것을 누가 알 것인가? 그렇게 되면 비록 나의 DNA는 자자손손 계승되고 있겠지만 그들과 나와의 유대관계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성씨는 우리가 이 땅을 밟을 때 이미 사라졌고, 그 성을 잇는 가문 역시 나의 대에서 끊긴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張’과 ‘Jang’ 모두 나의 정체를 나타내지만, 그 둘은 그 뜻과 의미에 있어 하등 연관이 없는 완전 남남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어권 사람들은 이름이 먼저 오고(first name), 성이 나중에 온다(last name). 우리는 반대로 성이 먼저 오고, 이름이 뒤에 따른다. 그 ‘사람’에 앞서 혈통과 가문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봉건시대의 잔재를 일소한다는 의미에서 ‘사라지는 성씨’도 마냥 서글퍼 할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장동만 /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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