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도는 전운

2019-05-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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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발발한 세계 제1차 대전은 유럽인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소식이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하면서 거의 100년 동안 유럽 대륙에서는 큰 싸움이 없었다. 소위 ‘영국의 평화(Pax Britannica)’라고 불리는 태평성대가 계속된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 전쟁이 없었던 것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1차 대전이 1914년에 터진 것을 우연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 해는 신흥강국 독일의 GDP가 영국을 능가한 해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발발 원인을 여러 가지에서 찾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기득권 세력인 영국과 신흥 독일 간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1941년 터진 태평양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도 태평양을 주도하던 미국의 헤게모니에 신흥 일본이 도전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정설이다. 한 때 동아시아의 미미한 후진국이던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강국으로 탈바꿈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중국 본토까지 세력을 넓혀가자 미국은 경제봉쇄로 이를 견제하려 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태평양 전쟁이라는 것이다.


최근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미중 간의 무역협상이 난항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번 주 중국이 약속을 번복했다며 지금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부과해 오고 있는 10%의 관세를 25%로 올리고 나머지 물품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관세 전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물러서지 않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9일 워싱턴에서 최종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결렬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으나 낙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는 이번 회담에서 미중이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이 10%에 불과하다며 관세인상 확률을 60%로 전망했다.

만약 이번 협상이 결렬될 경우 그 파장은 세계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올 들어 미 증시가 15%까지 오른 것은 대다수 투자가들이 미중 협상 타결을 낙관했기 때문이다. 지난 사흘간 미국 다우존스 산업 지수가 700포인트 가까이 빠진 것은 협상 결렬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역시 같은 이유로 8일 중국 상하이 지수는 4.4%, 선전 지수는 3.25% 폭락했다.

양국의 무역 전쟁이 격화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양국 사이에 끼여 있고 두 나라와의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이다. 9일 한국 코스피 지수는 전날에 비해 66 포인트 폭락했고 원 달러 환율은 달러 당 10원이 뛰며 1,180대를 돌파했다.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1,200대를 1차 저지선으로 보고 있지만 이것이 뚫리면 투자가들의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금융위기가 다가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 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아시아 맹주 자리를 놓고 곳곳에서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두 나라가 냉정을 되찾아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봐야겠지만 지난 100년간의 역사는 인간은 반드시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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