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전쟁-노예해방을 촉발시킨 선구자를 기억하는 산

2019-05-03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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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wn Mountain (4466’)

남북전쟁-노예해방을 촉발시킨 선구자를 기억하는 산

Brown Mountain 주위의 산세.

남북전쟁-노예해방을 촉발시킨 선구자를 기억하는 산

Farewell-to-Spring.


남북전쟁-노예해방을 촉발시킨 선구자를 기억하는 산

한적한 Bear Canyon Campground의 정경.


불혹의 나이에 고국을 떠나와서 25년이 넘게 이 미국땅에서 계속 살고있으나, 미국의 역사에 대해 특별히 따로 시간을 내어 배운 일이 없다. 그런만큼 제2의 고국이랄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한 나의 지식은 아무래도 피상적이고 지엽적일 수밖에 없겠다.

그런 가운데 나름대로는 내가 살고있는 이 미국의 위대한 점들을 여러가지 면에서 두루 느끼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남북전쟁을 치루면서 노예를 해방한 일이다.

사실 노예라는 신분계층은 세계의 많은 곳에서 두루 존재했었을 것이다. 가까이 우리 한민족을 예로 들자면 고조선 시대의 기록에도 ‘종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역모 등의 죄를 지어 처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이나 국가간 부족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쪽은 노예로 전락되는 일이 상례였으며, 일단 노예가 되고나면 그 신분이 또한 세습되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을 것이다.


남북전쟁(1861~1865) 당시에 이 미국에는 총인구 3,100만명의 12.8%인 약 400만명의 흑인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조선의 인구는 1,700만명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듯 하다. 남자 종을 ‘노’라 하고 여자 종을 ‘비’라고 했다는데, 노비는 성을 가질 수 없었다. 이 시기에 성씨가 없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에 이르렀다고 하니, 노비의 비율을 40%정도로 낮추어 보더라도 이 시기의 조선에는 약 680만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노비라는신분으로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나라 미국에는 예전에 노예제도가 성행했었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어찌 그런 야만적이고 비인도주의적인 일이 있었을까 라고 은연중에 이를 백안시하곤 했는데, 따지고 보자면 우리 조선은 그보다 훨씬 심했을 수 있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선의 차별화된 신분제도의 철폐는 1894년의 동학혁명에 따른 영향으로 동년 6월에 시작된 갑오개혁이 그 공식적인 시발점이 되었고, 그 이후 일제의 통치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양반 중인 상인 천민으로 구분해오던 신분차별이 완전히 소멸되어졌다고 한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남북전쟁이 종료된 1865년으로 조선의 동학혁명이나 갑오개혁보다는 29년이 빨랐다. 19세기말에 들어오면서 각 지역과 각 국가간의 교류가 급속히 확대되어진 사실을 고려하면, 혹시 미국의 노예제도폐지가 다른 나라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고 하겠으며, 조선에도 크든 작든 직접이든 간접이든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하여 노예제도가 계속 존속되어왔다고 가정한다면, 다른 나라들에도 그 영향이 미쳐, 아직도 노예나 노비라는 신분제도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도처에 여전히 존속되어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노예제도의 폐지를 헌법으로 명문화하는 결과를 만든 이 미국의 남북전쟁은 1859년 10월에 Harpers Ferry에서 발생했던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하며, 이 사건의 중심에 John Brown(1800~1859)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한다. Connecticut주에서 출생하여 모피가공업에 종사하던 분이었는데, 차츰 흑인노예들의 해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노예들을 무장시켜서 무력을 통해 이를 달성해야겠다는 신념으로 1859년 10월16일에 5명의 흑인과 3명의 아들을 포함한 총 21명의 추종자와 함께 Harpers Ferry에 있는 병기고를 습격한다.

때마침 뒷날 남군사령관으로 활약하게 되는 Robert E. Lee 중령이 부근에 휴가차 머무르다 진압임무를 하달받는데, 갑작스런 사태에 군복을 미처 구하지 못하여 평복차림으로 병력을 지휘했다고 한다. 결국 두 아들을 포함한 10명이 피살되고, John Brown 자신은 다른 6명과 함께 체포되며, 셋째아들 Owen과 다른 4명은 탈출한다. 필자가 피살자들의 명단을 살펴보니 사위로 추정되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이 사건이, 16개월쯤 뒤에 남북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Harpers Ferry Raid’이다.

자신의 거사가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동년 12월2일에 교수형에 처해진다. 뒷날 Henry David Thoreau는 Concord시민을 향한 공개연설에서 이렇게 그를 평가한다. “그는 정의롭지 않은 인간의 법을 따르지 않고 이에 저항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그처럼 일관되고 효과있게 나섰던 사람은 일찌기 미국의 역사에 없었다”


그런데 이 Harpers Ferry에서 탈출했던 John Brown의 아들 Owen Brown(1824~1889)은 어찌되었을까? 북군에 가담하여 남북전쟁을 치른 후에, 이곳 남가주의 Pasadena 인근의 El Prieto Canyon의 Cabin에 정착하여, 둘째아들인 형 Jason과 여동생 Ruth(남편을 Harpers Ferry에서 잃은 듯)와 함께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집 근처의 산에 아버지의 이름이 헌정되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Owen이 폐렴으로 사망했을 1889년 당시의 Pasadena의 인구가 2,000명 정도였는데, 그의 장례식 조문객이 2,000명을 넘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 때쯤엔 세인들의 이들 부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어땠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오늘은 산 자체는 대단히 소박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역사적인 사연을 담고 있는 Brown Mountain을 찾아 간다. LA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산은 여러 루트를 통해 오를 수 있으나, 여기서는 Eaton Saddle에서 시작하는 산행을 기술한다. 왕복 9마일에 순등반고도는 1200’ 쯤이고 6~7시간이 소요된다.

가는 길

I-210 에서 La Canada의 2번 Hwy로 나와서 북쪽으로 약 13마일을 가면 Red Box라고 부르는 휴게소를 겸한 주차장이 나온다. 도로변의 Mile-marker로는 38.32 가 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Wilson Road를 따라 2.3마일을 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져 나가는 3거리가 된다. Eaton Saddle이라고 부르는 해발고도 5100’가 되는 곳이다. 길 오른쪽에 주차공간이 있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의 입구에 안내판과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한다.

등산코스

차량통제 게이트를 지나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소방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길의 바로 왼쪽 길섶으로는 깊게 함몰된 Eaton Creek의 천길벼랑이 아찔하고, 길의 바로 오른쪽은 바로 머리위로 아스라히 솟구쳐 있는 San Gabriel Peak의 깎아지른 듯한 천길 암벽이 위태롭기만 하다. 정면 가까이로는 거대한 피라밋이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뾰쪽봉이 솟아있는데, Mt. Markham (5742’)이다.

출발점에서 약 0.4마일 정도를 걸으면 터널이 나온다. ‘Mueller Tunnel’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Eaton Saddle에서 Markham Saddle쪽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1942년에 산림청에서 건립했다고 하는데, 미상불 이 터널을 통하지 않고는 이곳을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지형을 이루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예전에 이 터널이 없었을 때에 이용되었다는 Trail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추락사 하기에 꼭 안성마춤이겠다 싶다. 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하다.

100m 남짓한 길이의 깜깜한 터널을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이젠 비로소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4거리에 이르게 된다. Markham Saddle이며 출발점에서 약 0.8마일되는 지점이다. 오른쪽에는 San Gabriel Peak과 Mt. Disappointment로 가는 등산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왼쪽은 Mt. Markham과 Mt. Lowe(5603’)로, 직진은 Mt. Lowe Campground로 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직진한다. Mt. Markham과 Mt. Lowe의 북쪽 기슭의 아래를 따라가는 이 길은, 오른쪽으로는 Bear Creek의 유장한 계곡과 이를 자양해주는 원천인 Mt. Deception(5796’), Mt. Disappointment(5960’), San Gabriel Peak(6161’) 등의 험준한 산줄기들이 가까이 한눈에 들어온다. Mt. Lowe Road라는 이 길은 경사가 거의 없거나, 또는 약간 내리막인 넓은 길이다. 등산시작점에서부터 약 2.5마일이 되는 지점에 오면 Mt. Lowe Road는 왼쪽으로 굽어지는데, 직진하는 방향으로 Tom Sloane Saddle 로 가는 등산로임을 표시하는 표지말뚝이 있다. 직진한다. 자그마한 물탱크를 지난다. 이내 꽤 급한 경사로 내려가는 구간이 된다. 3.5마일이 되는 Saddle지점에 이르면 등산로가 4거리를 이룬다. 이곳이 Tom Sloane Saddle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직진하여 앞에 있는 봉우리를 통과해야 한다.

이 Tom Sloane Saddle에는, 좌로는 Mt. Lowe Road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말뚝이 있다. 이 길은 Millard Canyon쪽에서 Brown Mountain을 오를 때 이곳에 이르게 되는 또 하나의 등산루트이기도 하다. 오른쪽은 Bear Canyon으로 내려가는 등산로인데 등산로의 유지상태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통과가 어렵진 않으며, 이 길을 계속가면 Tom Sloane Saddle에서 약 2마일되는 지점에 정갈한 분위기의 Camp가 있다. Bear Canyon Campground이다. 주로 반대쪽에서 Switzer Falls을 찾아온 산객들 가운데, 더 긴거리를 걷고자 하는 분들이 찾아 오는 곳이다. 이 코스를 좀 더 부연하자면, 이곳에서부터는 등산로 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쾌적하다. 서쪽 아래로 흐르는 Bear Creek을 따라 1마일을 더 가면, Red Box의 서남쪽으로 떨어져서 Switzer Falls를 거쳐오는 빗물의 흐름인 Arroyo Seco와 Bear Creek이 합수되는 지점이 된다. 오른쪽에서 내려오는 Arroyo Seco 의 흐름을 따라 다시 1마일을 가면 Switzer Falls에 이르고, 다시 2마일을 더 가면 Switzer Campground에 다다른다. Tom Sloane Saddle에서 Switzer Camp까지는 6마일이 된다.

각설하고, Tom Sloane Saddle에서 우리는 직진하여 꽤 가파른 경사로를 오른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다소 험준해 보이고 하얀빛이 나는 비슷한 분위기의 봉우리 3개를 차례로 지나야 한다. 30분이 채 안걸려 세번째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이제 눈앞으로 황토빛이 섞인 부드러운 산줄기가 나타난다. 이 능선의 오른쪽 끝 부분이 Brown Mountain의 정상부이다.

널찍하고 밋밋한 정상에는 가슴높이가 될만큼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있다. 전망이 대단하다. 서쪽으로 정상에 라디오 타워가 서있는 산은 Lukens(5074’)이다. 그 오른쪽으로는 Condor(5440’), Fox(5033’), Gleason(6520’) 등 여러 봉우리가 식별되고, 동북쪽으로는 Deception, Disappointment, San Gabriel, Markham, Lowe 등이 벌려있다.

서남쪽으론 Pasadena를 비롯한 인근도시들의 모습이 멀지않다. 넓은 터에 큰 건물들이 조화롭게 밀집되어 있는 곳이 NASA의 핵심연구소라는 우주탐험의 산실, JPL이다.

정상에서 바로 동남쪽의 아래 계곡쪽에 John Brown의 두 아들 Owen과 Jason, 그리고 딸 Ruth가 살았던 Cabin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의 정상은, 주변의 병풍처럼 둘러있는 험산들에 비해 높이도 훨씬 덜하고 산세도 많이 부드러워, 매우 안온한 느낌이 든다. 정상에서의 전망을 즐기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주차된 Eaton Saddle로 그대로 되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돌아나오는 길에 Tom Sloane Saddle에서 Bear Canyon으로 내려가서 Switzer Falls를 거쳐 Switzer Campground로 나가는 코스로 산행을 할 수도 있다. 차를 Switzer Campground의 주차장에 미리 세워두면 된다. 이 때의 전체 산행거리는 11.5마일이 되는데, 순등반 고도는 오히려 낮아져 900’쯤이 되지 않을까 한다. Bear Creek의 물길을 따라 완만히 내려가다가, Arroyo Seco의 물길을 따라 완만히 오르게 되므로, 산행 자체도 훨씬 청량하고 쉬우면서도 다양성이 있다. 더구나 이 지역의 산세나 지리의 대강을 파악하는 효과도 크기에 열성있는 산객에겐 적극 권하고 싶은 코스이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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