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의미한 ‘최고임금’ 논쟁

2019-05-0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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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사회를 달군 핫이슈 가운데 하나는 디즈니 CEO 밥 아이거의 천문학적 액수의 급여를 겨냥한 디즈니 상속녀의 작심 비판이었다. 아이거가 지난 한해 급여로 총 6,600만 달러를 받은 데 대해 디즈니 공동창업자 로이 디즈니의 손녀인 애비게일 디즈니가 트위터를 통해 “미쳤다”고 비판하면서 아이거 급여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상속녀는 아이거의 급여가 디즈니 직원들의 평균인 4만 6,127달러의 1,424배에 달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정상이라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뒤이어 애비게일은 아예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디즈니의 실적과 성장은 일선에서 손님들을 맞는 직원들의 미소와 노고 덕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아이거 급여의 절반은 디즈니 하위직원 10%에 분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도 그녀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중간수준 근로자보다 700배 600배 500배를 더 받을 자격이 있는 CEO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연히도 같은 시기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한 재벌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며 받아간 410억원 퇴직금을 놓고 “과도하다”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입이 벌어질 만큼 엄청난 액수의 퇴직금은 그가 6개의 보직을 갖고 있었던 데다 퇴직금 산정을 하면서 일반직원들보다 4배나 더 높게 배수를 적용해 계산한 결과이다. 아무리 그래도 410억원이라니… ‘이상한 퇴직금 셈법’ ‘어처구니없는 셀프 퇴직금’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디즈니 상속녀가 고작 아이거 한사람의 급여를 깎자고 비판에 나선 것은 아닐 터. 평소 그녀가 밝혀온 소신에 비춰볼 때 날로 심각한 병리현상이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자 아이거 케이스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서글픈 일이지만, 항상 이런 이슈는 가진 사람이 문제제기를 할 때 더 설득력을 갖고 의도의 순수성은 덜 의심 받는다. 그녀의 의도(?)대로 애비게일의 문제제기는 기형적인 보상에 대한 논쟁을 다시 한번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런 논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최고임금(maximum wage)’이다. 최고임금은 말 그대로 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급여를 뜻한다. 여기에 상한선을 둬 최고경영자와 기관책임자의의 연봉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제안은 기업 CEO의 연봉을 그 회사 최저연봉자의 100배로 제한하자는 아이디어다.

미국의 연방최저임금 원년은 1938년이다. 당시 최저임금은 25센트였다. 이후 인플레를 감안할 때 현재의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당시보다 3분의 2 정도 더 올랐을 뿐이다. 반면 CEO들의 소득은 말 그대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듯 올랐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그 속도와 폭은 어지러울 정도다. CEO들 급여에 ‘제도화된 절도’라는 명예롭지 못한 비판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최고임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과세를 통해 거둬들여야 한다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소득규제를 뜻하기도 한다. 과세를 통한 소득규제를 처음 주창한 사람은 독일출신 철학자 펠릭스 아들러였다. 19세기 말 그는 소득이 어떤 수준의 고액에 도달할 경우 생활 편의와 실질적 품위를 충족시키고 남는 선부터는 100% 최고세율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그의 주장은 급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1차 대전 전비충당을 위해 1918년 100만달러 이상 초과소득에 77% 최고세율이 적용되면서(1914년에는 7%였다) 일정부분 현실화됐다. 이후 최고세율은 등락을 거듭한 끝에 트럼프 행정부 들어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최고임금을 일반 직원들의 소득과 연동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아들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허영과 오만과 권력이 과다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뒤처진 이들의 형편을 헤아리고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와 동기를 자연스럽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또 “CEO와 일반 직원 간에 급여가 20배 이상 차이가 나면 기업 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피터 드러커의 경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나친 불평등이 조직과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부자들도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직원들보다 1,400배 더 많은 급여를 챙긴 밥 아이거는 얼마나 행복할까. 과연 행복하기는 한 것일까.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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