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지랖이 가장 넓은 지도자

2019-04-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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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넓다’는 주제넘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빗대어 경멸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점잖은 표현은 결코 아니다. 때문에 외교관이나 국가지도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볼 수가 없다.

이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김정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데 심술이 나자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욕을 해댄 것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 심한 욕설도 예사였다. 그러니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라는 것이 한국의 집권여당에서 나오는 주장인 모양이다. 그 주장은 그렇다고 치고, 김정은의 표현대로 정말이지 오지랖이 넓어도 수준급으로 넓은 지도자는 누구일까.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트럼프다.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위상이 다소 약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유일한 수퍼 파워다. 그 미국의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본인이 원하든 않든 주요 국제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그러니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은 트럼프에게는 지나친 감이 있다.

미국이 잘 되는 꼴은 결코 볼 수 없다. 미국의 위상이 약해진다. 미국의 국가 이해에 해가 된다. 그런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무조건 껴든다. 러시아의 현대판 차르 푸틴의 모토다.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이 꿈이다. 그러니까 소련제국 시절의 위상을 되찾는 게 그의 목표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성기 시절 지도자인 양 나댄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도 모자라 시리아 등 중동에도 개입했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에 대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나섰던 것.

그 뿐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사태에도 껴들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의 선거에도 개입해 역정보전을 펼쳐왔다. 그래서인가. 주요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푸틴은 트럼프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조사되기도 했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다. 외교란 것은 국력이 따르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푸틴 러시아의 실상이 바로 그렇다.

산업이라고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내다 파는 것 밖에는 없다. 러시아 경제는 유럽의 열강과 비교는커녕 한국에도 뒤진다. 그런 주제에 푸틴은 밖에서 완력과시에 여념이 없다. 그와 비례해 내부경제는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러시아의 현실이다.


러시아의 젊은 세대 중 거의 반 정도가 해외이민을 희망하고 있다는 갤럽여론조사가 바로 그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경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푸틴의 열렬지지층이었던 젊은 세대(15~29세)에서 반 푸틴정서가 확산, 44%는 해외이주를 원하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아도 인구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는 젊은 세대의 탈출현상과 관련해 자칫 빈 둥우리가 될 수 있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푸틴이 한반도문제에도 개입하고 나섰다. 김정은을 블라디보스톡으로 불러들여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한때 북한의 종주국이었다. 그 영광을 되찾겠다는 걸까. 그런데 생각밖에 세계의 언론은 이 만남에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 한두 줄 기사로 다루는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오지랖이 넓은 푸틴과 최악의 소년 독재자 김정은의 만남. 그 회담 결과란 것이 너무 뻔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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