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극성부릴 채무독촉

2019-04-23 (화)
작게 크게
전화벨이 울리기만 해도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미국인들은 상당히 많다. 집요한 빚 독촉 전화를 받아본 사람들이다. 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집이나 직장은 물론, 가족·친척·지인들에게까지 계속되는 채권추심업자(debt collector)의 ‘접촉’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은 매년 7,0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 상당히 위협적인 이들의 채무독촉이 앞으로는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지금은 전화와 편지가 주 접촉 수단이지만 곧 문자메시지와 이메일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당시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캐슬린 크래닌저 국장이 채권추심을 규제하는 공정채권추심법의 개정안을 곧 내놓겠다고 지난주 밝혔다.


채권추심업자들이 크레딧카드나 자동차 할부금 등 페이먼트 연체로 빚을 진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자주 전화를 할 수 있는지,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도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이 포함될 이번 개정은 채무독촉을 둘러싸고 또 한 차례 소비자보호 논쟁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크래닌저 국장은 공정채권추심법이 “길모퉁이 마다 공중전화 부스가 서있고 셀폰은 상상도 못했던 40년 전 제정된 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면서 새로운 통신 기술이 반영된 ‘현대화’ 업데이트라고 강조한다.

CFPB는 지난 12월 크래닌저 국장 취임 후 채권추심업계의 남용사례 단속을 소홀히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으며 이번 제안도 규제 완화를 선호하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CFPB가 근본적 개조를 추진하며 대부업체들에 대한 일부 규제를 줄이기 시작한 와중에서 나왔다.

채무 추적과 빚 독촉 등에 12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110억 달러 규모의 채권추심 비즈니스는 금융서비스 중 불만신고 건수가 가장 많은 대상의 하나다. 지난 한 해 동안 CFPB엔 채무독촉 관련 8만1,500건의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었다.

관련 서베이에 의하면 ‘접촉’ 당한 소비자 4명 중 한명은 ‘위협적’으로 느꼈으며, 4명 중 3명은 접촉 중단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다고 답했다. 34%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사이 걸려오는 전화에, 17%는 1주일에 8번 이상 전화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추심업체들은 현행법엔 애매한 사항이 많다면서 명확하게 선을 긋는 개정을 통해 자신들도 벌금과 소송을 피할 수 있기 원한다고 강조한다. 텍스트나 이메일 접촉도 현재 “불법은 아닌데 함정이 많아” 접촉 수단으로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들 업계가 텍스트와 이메일 허용을 환영하는 이유는 점점 늘어가는 밀레니얼 세대 채무자들이 전화응답보다는 텍스트와 이메일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 운동가들은 크래닌저 국장의 친기업적 시각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소비자 보호에 주력해야할 CFPB가 소비자 불만 많은 업계의 편에 서서 기존법을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뜩이나 공격적인 채무독촉이 텍스트와 이메일까지 허용되면 더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채무독촉 협박에 겁먹고 섣불리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사실을 정확히 파악한 후 관련 정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빚 진 죄인’이라 해도 미국의 소비자권리 보호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