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 사회주의자’

2019-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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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는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대인을 아버지로, 역시 조상이 폴란드에서 온 유대인을 어머니로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일가족은 히틀러에 의해 몰살당했고 이것이 그가 일찍 정치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버몬트로 이주해 수년 동안 정신병원 보조, 학령 전 아동 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1년부터다. 그 때 베트남전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갓 탄생한 자유동맹당이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갓 30이 된 그를 내세운 것이다.

선거에서는 참패했지만 그는 여기서 소명을 발견했다. 연방상원에 이어 1972년 버몬트 주지사, 1974년 연방상원, 1976년 버몬트 주지사에 다시 도전했지만 득표율은 6%를 넘긴 적이 없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데는 무능했다. 만년 낙선자로 생을 마감할 것 같던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의 득표 현황을 분석해 준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에게 가장 많은 표를 줬던 벌링턴 시장에 1980년 출마한 그에게 하늘은 10표 차의 승리를 안겨준다. 그는 시장에 당선되면서 연봉 3만3,000달러라는 꿈같은 돈을 만져보게 된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자인 그는 동네 산 이름을 따 ‘그린 마운틴의 붉은 시장’이란 별명을 얻게 되며 언론으로부터 ‘미국 20대 우수 시장’으로 뽑히기도 한다. 그는 시장으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이며 연속 재선에 성공하고 1990년에는 연방하원에 출마, 2004년까지 연속 당선된다. 2006년에는 연방상원에 출마, 당선되고 2012년에는 71%라는 압도적인 표로 재선에 성공한다. 2016년에는 대선에 출마, 힐러리에게 아슬아슬하게 졌지만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2020년 대선에도 민주당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수년간 세금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아온 버니 샌더스가 이번 주 10년 치를 모두 공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그 동안 왜 공개를 꺼려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와 아내 제인의 2016년과 2017년 수입이 100만 달러가 넘는다.

상원의원으로 공직자인 그의 수입이 이렇게 높은 것은 그가 대선에 출마하며 쓴 책의 판권으로 2017년 한 해에만 87만5,000달러를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중 32%를 세금으로 냈다.

합법적으로 벌고 세금을 제대로 냈으니 문제될 것은 없으나 1% 특권층을 공격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온 그가 사실은 1%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허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40%가 400달러의 비상금이 없을 정도로 갑갑한 삶을 살고 있고, 절반 이상이 IRA 같은 은퇴자금도 없다.

샌더스의 세금 보고에 사람들이 이 정도 실망하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의 세금 보고서가 공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불문가지다. 그가 왜 죽어도 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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